
왜 그런지는 몰라도, ‘능소화’에 대한 정감이 다른 어떤 꽃보다 더 하다. 능소화가 드리워진, 고즈넉한 옛 시절 정취를 간직한 돌담 집에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루지 못했다.
500년 전 조선시대, 1000년 전 고려시대의 삶을 어려서부터 그리워했던 이유를 알 수는 없다. 그리고 돌담이 있는 99칸 방 기와집을 짓고 싶은 욕망, 그 근원이 어디인지도 불확실하다.

고대에서 현세에 떨어진 존재일까? 문인들은 꽃에 대해 읊었지만, 나는 꽃을 노래해 본 적이 없다. 나는 문인이 아닐 뿐더라, 능소화를 늘 감상하지도 않았다.
새삼스레 능소화가 내 맘을 끄는 것은, 아마 적어도 천 년 전에 나는 능소화가 드리워진 돌담 집에서 살았던 것 같다. 옛 시절에 능소화는 양반집에서만 키웠다고 하니, 아~ 나는 신분이 고귀했었나 보다!
능소화에 대한 격조 높은 글은 찾지 못했다. 곳곳에 널부러진 글이 모두 대동소이한 것은, 알려진 몇가지 사실을 베끼고 베껴서 일 것이다. 이는 천년의 세월을 드리운 능소화에 대한 예의는 물론 아니다.
얕은 지식이 부끄럽지 않은 것은 빠른 속도 때문이다. 지식의 하루살이는 두꺼운 책 종이에 지쳤기 때문이고, 또한 눈으로 보는 지식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변명은 나의 치부도 가린다
보다 앞선 세대의 지식인, 언론인이자 역사학자, 독립운동가였던 호암(湖巖) 문일평(文一平, 1888-1939) 선생은 1930년대 펴낸 <화하만필(花下漫筆)>에서 꽃을 예찬했다.
그곳에서 호암 선생은 “서울에 이상한 식물이 있는데, 나무는 백송(白松)이요, 꽃은 능소화(凌霄花)”라고 적었다. 능소화가 이상한 것은 그만큼 희소했다는 것이리라!
7월이 지나면 능소화는 싱싱한 채로 가지에서 떨어져 나간다. 그리고 결코 무너지지 않는 나의 기와집 돌담에 능소화가 다시 드리우면, 연분홍 저고리를 입은 어느 16세 소녀는 그곳에서 미소를 짓는다.
천년 전 그곳에 그 소녀를 부끄러이 바라보는 나를 보았다!








Story of Travel
2022년 6월 23일, 아산시 외암 마을에서 촬영했습니다. 능소화는 원래 7월 초부터 피기 시작하는데 올해는 이상 기온으로 벌써 피었네요.
외암 마을은 500년 전 예안 이씨 일가가 낙향하여 살았던 곳입니다. 그의 후손들을 통해서 반촌의 면모를 갖추게 되고 지금의 민속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 하죠.
전통 가옥을 활용한 전통가옥 체험 및 민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아산 외암 마을은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고스란히 간직한듯 하네요. 마을이 고즈넉하니 좋아요
여기는 능소화 필때 사진 작가분들이 모델 데리고 많이 찍는 명소 자리기도 하죠. 담장 밑에 핀 능소화가 명소만큼 멋집니다
성인은 한화 2,000원 그외 분들은 1,000원입니다. 아산 주민은 무료이구요, 외지 사람은 월요일만 무료입니다. @경아
우당탕(牛堂湯)
‘우당탕(牛堂湯)’은 우족(牛足)을 푹 고아 만든 진한 사골 설렁탕입니다. 사골(四骨)은 소의 네 다리 뼈를 칭하며, 약으로도 쓰입니다. 사골국은 수 백년 전부터 한민족 음식이었고, 그것은 마치 삶의 희노애락(喜怒哀樂)처럼 몸과 육신을 강하게 합니다. ‘우당탕’은 내 삶을 기록하는 플랫폼입니다. 사골 설렁탕을 먹으면서 나누는 축적(蓄積)된 이야기, 그것은 소소하지만 드라마틱하고, 때로는 격동적인 인생 역정입니다. 우리 삶의 흔적, 그 글을 우당탕(牛堂湯)에 올리고 있습니다. @woodang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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