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부모님은 농사꾼이셨다.
어릴 적부터 벼농사와 채소농사를 보며 자랐다. 초봄이면 씨를 뿌리고 모종을 키운 뒤 밭에 옮겨 심었다. 남는 모종은 시장에 내다 팔아 용돈벌이도 하셨다.
농사는 심는다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김도 매야 하고, 가지도 쳐줘야 하며, 벌레도 잡아야 한다. 오이나 줄당콩 같은 작물은 지지대도 세워줘야 한다. 부모님은 수십 년 동안 농사를 지으셨지만 정작 나는 농사일을 해 본 적이 별로 없다.
우리 집은 시내 변두리에 있었고 친구들 부모님은 공장에 다니는 월급쟁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어린 마음에 농사짓는 부모님이 조금 부끄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면서 부모님은 러시아 장사를 시작하셨다.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홀로 힘들게 장사를 하셨고, 아버지는 자식들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를 오가셨다. 농사만으로는 자식들을 먹여 살리고 공부시키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부모님, 특히 어머니는 더 나은 삶을 위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오셨다. 외할머니께서 우리 집에 오셔서 나와 동생을 돌봐 주셨다. 부모님은 늘 말씀하셨다.
“공부나 열심히 해라. 공부 잘해야 나중에 출세한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다행히 사범대에 진학했다. 당시 사범대는 졸업 후 교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학생과 부모들이 선망하는 학교였다. 부모님도 무척 기뻐하셨고 동네분들을 불러 큰 잔치까지 차렸었다 .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부모님 특히 어머니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얻은 결과였다.
그렇게 싫어하던 농사를 이제는 내가 짓고 있다.
집 뒤뜰의 작은 텃밭에 오이, 고추, 땅꽈리, 내기, 패션프루트, 포도, 차요테, 여주, 토마토 등을 심고 가꾼다. 결혼해서 애를 낳기 전까지만 해도 농사를 짓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 저렇게 힘들게 농사를 지을까? 사 먹으면 되는데.”
하지만 직접 흙을 만지고 씨앗을 심으며 부모님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키운 내기를 무료로 나눠 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매년 봄이면 땅꽈리와 내기 모종을 조선족분들에게 무료로 나눠 드리고 있다. 어느 날 한 고향 분이 내가 정성껏 키운 모종을 받아 들고는 웃으며 말씀하셨다.
“역시 농사꾼 딸은 다르구나. 농사꾼 딸이 아니랄까 봐 모종도 이렇게 잘 키웠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스레 웃음이 났다. 어릴 적에는 농사짓는 부모님이 부끄럽게 느껴졌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누군가가 나를 농사꾼의 딸이라고 불러주니 기분이 묘했다. 싫지는 않았다. 오히려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지는 느낌이었다.

사실 나는 플러싱에 살지 않는다. 집은 엘머스트에 있고 플러싱까지는 차로 15분 남짓 걸린다. 그래도 모종을 나눠 드리기 위해 일부러 시간을 내어 플러싱으로 간다. 모종을 받으러 오신 분들과 고향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안부를 묻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이 귀한 걸 그냥 주시네요.”
“농사일 할 때 힘쓸 일 있으면 꼭 불러 주세요.”
“이렇게 좋은 걸 받았는데 드릴 게 없네요.”
어떤 분은 플러싱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시원한 물 한 병을 건네주시기도 한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그런 따뜻한 말 한마디에 하루가 환해진다.
내게는 흔한 모종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고향의 추억이고, 봄을 기다리는 즐거움이며, 정이 담긴 선물인 것이다. 나눠 드린 모종을 받아 들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더 큰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제야 알 것 같다. 부모님이 평생 농사를 놓지 못했던 이유를.
농사는 단순히 채소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정을 키우는 일이었다. 씨앗 하나를 심으면 열매만 맺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연도 함께 자라난다.
특히 뉴욕에 사는 우리 조선족들은 서로를 챙기고 나누는 정이 남다른 것 같다. 고향을 떠나 이 머나먼 타국에서 살아가지만 작은 모종 하나를 나누고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서로의 마음을 이어 간다.
어쩌면 내가 키우고 있는 것은 채소가 아니라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은 정인지도 모른다.
오늘도 나는 작은 텃밭에 물을 준다.
채소를 키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의 정을 키우기 위해서.
글 | 칼럼니스트 엄복실 (Fiona Yan)
— 뉴욕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