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August 2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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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미국 영화관 관람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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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7년 왜(倭)는 조선을 재침한다. 그 해 9월, 왜는 명량해전(鳴梁海戰)에서 패배한 데 이어 육전(陸戰)에서도 계속 고전하였다. 다음 해 8월,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풍신수길)가 병사하기 전, 조선에서 철수할 것을 명한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豊臣秀頼풍신수뢰)’를 지켜주라고 말한다. 야망을 감추고 살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덕천가강)’가 이에 침묵하자, 도요토미는 분노하며 죽는다. 왜군은 도요토미 명령에 따라 순천 등지로 집결하면서 철수작전을 서둘렀다. 김한민 감독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는 여기에서부터 시작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 –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 스틸컷)

왜군의 철수 소식을 접한 이순신은 명나라 수군도독(水軍都督) 진린(陳璘)과 함께 1598년 9월 고금도(古今島전라남도 완도군 고금면에 속한 섬) 수군 진영을 떠나 노량 근해에 이르렀다. 명나라 군대와의 수륙합동작전으로 왜교(倭橋)순천 망해대 옛 이름에 주둔하고 있는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소서행장)’ 부대를 섬멸하기 위함이었다.

고니시는 일본 센고쿠 시대 무장이며, 그리스도인(기리시탄) 다이묘(大名) 중 하나로 유명하다. 10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일본 각 지방의 영토를 다스리며 권력을 누렸던 영주였다.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누스이다. 다이묘는 무로마치 시대부터 전국 시대를 거쳐 에도 막부 시대까지 다양한 계급의 변천사가 있었으나, 대체적으로 쇼군 바로 아래의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고니시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최초로 상륙한 일본군 선봉장이라 임진왜란에 참전한 일본 무장 중 가토 기요마사(加藤清正가등청정)와 더불어 매우 유명한 인물로 알려졌다. 고니시는 이순신과 수 년간 싸웠다. 그는 이순신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이순신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고니시는 쇼군 도요토미 히데요시 사후의 혼란을 짐작하여, 그 혼란을 틈타 이순신이 침략한다면 막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래서 이번 전쟁에서 반드시 이순신을 죽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본국으로 돌아가 주군의 어린 아들 ‘히데요리’를 지켜야한다는 것도 알았다.

“오늘 진실로 죽음을 각오하오니, 하늘에 바라옵건대 반드시 이 적을 섬멸하게 하여 주소서”

고니시는 수륙 양면으로 위협을 받게 되자 진린에게 뇌물을 바치고, 퇴로를 열어줄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진린은 고니시가 마지막으로 요청한 통신선 1척을 빠져 나가게 하고, 이순신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고니시는 통신선으로 시마즈(島津義弘)와 연락해 남해·부산 등지에 있는 왜군 수군의 구원을 받아 조·명 연합수군을 협공하면서 퇴각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한 고니시의 전략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은 진린과 갈등이 있지만, 한편으로는 진형을 재정비해 왜군을 맞아 격멸하겠다고 결심한다.

진린은 왜군을 적당히 돌려보내 희생을 줄이고 전쟁을 끝내자고 주장했고, 이순신은 왜가 다시는 조선에 침략하지 못하게 철저히 섬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노량해전 직전까지 진린에 대한 이순신과 조선 조정의 평가는 매우 부정적이었다. 17세기 이후 기록에는 이순신의 지휘력과 인품을 직접 겪어본 진린은 초기 안하무인이었던 모습과는 달리 점차 이순신에게 감복하게 된 것으로 보여진다.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

“이순신은 천지를 주무르는 경천위지(經天緯地온 천하를 조직적으로 잘 계획하여 다스림)의 재주와 나라를 바로 잡은 보천욕일(補天浴日큰 공훈을 세움을 이르는 말)의 공로가 있는 사람이다.”라고 칭송하는가 하면, 자기보다 두 살 어린 이순신 장군을 ‘어르신’이라는 뜻의 ‘리예'(李爺lĭyé) 혹은 ‘라오예'(老爺lǎoye)라는 호칭으로 높여 불렀다. 또한 자신이 탄 가마가 감히 이순신이 탄 가마보다 먼저 나가는 일이 없도록 했을 정도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진린은 이순신에게 조선에서 왕이나 신하들로부터 미움을 받아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살 바에, 함께 명나라로 가서 황상을 모시며 제 능력을 떨치고 부귀를 누려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진린은 이순신이 조선 조정(朝廷)의 시기질투로 승전 후 무사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한 듯 하다.

고니스를 돕기 위해 ‘시마즈 요시히로(島津義弘도진의홍)’가 출병한다. 요시히로는 사쓰마국(薩摩国살마국) 시마즈가 17대 당주이며, 시마즈 타카히사의 차남으로 큰형인 요시히사를 도와 수많은 전쟁을 치르며 규슈 통일에 힘쓴 일본 센고쿠 시대와 에도 시대의 무장이자 다이묘였다.

시마즈 요시히로

시마즈는 이순신과 싸운 적이 없었으나 거북선을 침몰시킨 전력이 있었다. 이순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11월 18일 밤, 이순신의 예견대로 노량 수로와 왜교 등지에는 500여 척의 왜선이 집결해 협공할 위세를 보였다. 200여 척의 조·명 연합수군을 거느린 이순신은 “이 원수만 무찌른다면 죽어도 한이 없다(此讎若除死則無憾차수약제사즉무감)”고 하늘에 빌고 전투 태세에 들어갔다. 왜는 조선의 오랜 전쟁 원흉이자 고향 아산에서 전사한 세째아들 ‘면’의 원수이기도 했다. 이순신은 이 전투에서 자신이 전사할 수 있다는 것을 예견했는지도 모르겠다.

“내 지난 번 천문을 보니 대장별이 떨어지던데, 공이 이를 모르지 않을 것인즉, 어찌 무후의 기도법을 쓰지 않는 것이오?”라고 진린이 물었다. 이순신이 답했다.

“내 충성이 무후만 못하고, 내 덕망이 무후만 못하고, 내 재주가 무후만 못하여 세 가지 다 무후만 못한데, 무후의 기도법을 쓴다고 하늘이 능히 들어 주시겠소?”

무후는 제갈량의 작위 무향후(武鄕侯)이다. 진린은 어느날 천문을 보다 대장별이 떨어짐을 알고는 이순신의 안위가 걱정되어 제갈무후의 고사를 따라 제단을 쌓아 기도를 올려 명을 늘려보라 간곡히 청한다. 이에 이순신은 자신의 충성과 덕망과 재주가 무후만 못하니 하늘이 어찌 들어주겠느냐며 사양했다. 충의와 지혜의 상징 제갈량에게 빗댈 정도였으니, 이순신에 대한 진린의 호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순신 영화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는 이순신과 진린의 갈등만 있을 뿐, 진린의 이순신에 대한 이런 장면이 묘사되지는 않아 아쉬움이 있었다. 이런 배경을 알고 영화를 관람한다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이다.

19일 새벽, 싸움은 막바지에 이르고 이순신과 진린은 서로 위급함을 구하면서 전투를 독려하자 왜의 수군 선박 200여척이 불에 타 침몰하거나 파손되고 100여 척이 이순신 함대에 나포되었으며 나머지 패잔선들이 관음포 쪽으로 겨우 달아났다.

이순신은 같은 날 오전 관음포(觀音浦)로 도주하는 마지막 왜군을 추격하던 중, 총환을 맞고 쓰러지면서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戰方急愼勿言我死전방급신물언아사)”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둔다.

이 해전에서 명나라 장수 등자룡(鄧子龍)과 가리포첨사(加里浦僉使) 이영남(李英男), 낙안군수(樂安郡守) 방덕룡(方德龍) 등이 전사하였다. 한편, 순천 왜교에서 봉쇄당하고 있던 고니시의 군사들은 남해도 남쪽을 지나 퇴각해 시마즈의 군과 함께 부산에 집결, 철수했다.

노량해전은 1598년 12월 16일 새벽, 전라좌도 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과 명나라 수군도독 진린이 지휘하는 조선-명나라 연합함대가, 철수하려는 고니시 유키나가의 일본 함대를 구조하려는 시마즈 요시히로의 일본 함대를 속여 노량해협에 유인, 관음포로 몰아넣어, 왜군 대다수를 침몰, 나포시켜 큰 승리를 거두며, 임진왜란-정유재란 7년 전쟁을 끝낸 전투이자 이순신 생애 최대, 최후의 해전이다.

영화를 보면서 세 가지 역사적 가설을 해 보았다. 첫째, 철수하려는 왜군을 적당히 공격 후 보내 희생을 줄이자는 진린의 주장을 따랐다면 이순신은 전사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승전 후 조선 조정이 이순신을 어떻게 했을 지는 차치하고. 둘째, 이순신이 도요토미 사망 후 발생할 왜국의 혼란 등 정치적 이해가 있었다면 고니시 함대를 그대로 보내고, 전열을 정비해 혼란을 틈타 왜국을 공격했다면 어떠했을까. 세째,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음에 이르지 않아 철수를 명하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였을까하는 것이다.

‘노량: 죽음의 바다’ 영화평 대부분은 이순신의 위대함, 인간적 고뇌에 대한 것이고, 사실 그래야 하지만, 영화에서 다루지 않은 진린의 인간적 면모에 대해 초점을 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노량해전과 주요 인물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본다면 더 깊은 감동을 받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ɔ) Char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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