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민 1세대로 살아온 시간은 한 단어로 요약된다. 버티는 것.
부모님 세대가 물려준 삶의 공식은 분명했다. 공부를 잘해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 성실하게 일하면 결국 잘 살게 된다는 믿음. 우리는 더 나은 삶을 찾아 한국으로, 미국으로 낯선 땅을 떠돌면서도 그 믿음 하나를 붙들고 견뎠다.
“열심히 하면 된다.”
“힘들어도 참고 가면 결국 좋아진다.”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적어도 한 시대를 살아내는 방식으로는 충분히 작동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공식이 현실을 설명하지 못하기 시작했다. 똑같이 열심히 일하는데 결과는 달랐다. 누군가는 안정에 이르렀고, 누군가는 제자리였으며, 또 누군가는 더 깊은 불안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건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의 변화였다. 같은 돈을 벌어도 그 돈의 힘은 예전 같지 않았다. 가만히 쥐고 있는 것만으로 가치가 조금씩 줄어드는 시대, 노동의 격차보다 자산의 격차가 더 빠르게 벌어지는 시대. 인플레이션과 자산 시장은 소리 없이 삶의 기준을 바꿔놓았고, 성실하게 벌어 모으는 것만으로는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에겐 그 변화를 배울 시간조차 없었다. 너무 오래, 너무 바쁘게 일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에 온 지 20년이 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아주 단순한 감정 하나가 나를 멈춰 세웠다.
열심히 모은 돈이 있었다. 그런데 그 돈이 어느 순간 ‘안정’이 아니라 ‘정체’처럼 느껴졌다. 내가 가만히 있는 동안 물가는 올랐고, 같은 돈으로 할 수 있는 선택은 줄어들었다. 그제야 처음으로 이해했다. 나는 돈을 지키고 있다고 믿었지만, 실은 조용히 잃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돈을 지키는 법은 부모님에게서도, 학교에서도 배운 적이 없었다. 우리는 돈을 버는 법만 알고, 돈을 지키는 법은 모른 채 살아왔다. 그 시절엔 생존이 먼저였고, 금융을 배울 기회 자체가 드물었으니까.
그렇다고 그 아쉬움을 후회로만 묻어둘 수는 없었다. 우리는 늦게나마 금융 공부를 시작했다.
지난 1년 반 동안, 서른 명 남짓이 매주 두 번씩 모였다. 스무 살 초반부터 예순 후반까지, 나이도 직업도 제각각이었다. 영어도 낯설고 금융 용어도 복잡했지만 멈추지 않았다. 완벽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더 이상 모른 채로 살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여덟 명이 금융 라이선스를 따기도 했다.
하지만 라이선스보다 값진 것은 따로 있었다. 돈을 보는 눈이 바뀐 것이다. ‘얼마를 벌 수 있는가’가 아니라 ‘이 돈이 어디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기 시작했다.
배움에는 늦음도 빠름도 없다. 시작하는 순간이 늘 가장 이른 때다.
이민자로 살아온 우리의 삶은 이미 충분히 강했다. 버텨낸 것만으로도 설명되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시대가 달라졌다. 이제는 돈을 버는 능력보다 돈을 이해하고 다루는 능력이 더 중요한 시대다. 이 깨달음은 늦게, 그러나 무겁게 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절망만 남지는 않았다. 지금이라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 오히려 출발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의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나이도 직업도 달랐지만, 돈에 대해 제대로 배울 기회를 갖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래서 이건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결국 같은 질문 앞에 서 있다. 무엇을 다음 세대에 남길 것인가.
성실함과 책임감이라는 기본은 여전히 소중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갈 자녀들을 충분히 준비시킬 수 없다. 우리가 몰랐던 것을 이제는 배우고, 이해하고, 조금씩 바꿔야 한다. 삶을 대하는 태도뿐 아니라, 돈을 바라보는 방식까지도.
우리는 돈을 벌었지만, 시대는 읽지 못했다. 이제라도 그 시대를 읽기 시작한다면 — 그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값진 자산일 것이다.
글 | 유미(Yumi Li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