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독립 250주년, 그 발걸음은 결코 조용하지 않다. 함성과 함께 밀려온다.
월드컵이 북미 대륙에 상륙하고, 세계 최고의 격투 무대 UFC는 백악관에서 “프리덤 250” 이벤트를 성황리에 주최했다. 누군가는 쇼맨십이라 웃어넘기고, 누군가는 과하다며 눈살을 찌푸린다.

하지만 스포츠와 주권을 한자리에 놓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운동 경기란 본래 전쟁을 대신해 문명이 마련해 둔 정중한 대체 무대였다. 무기 대신 몸으로, 최후의 수단 대신 유희로 힘을 겨루는 자리였던 것이다.
바로 그 폭발적인 에너지, 개척 시대부터 이어져 온 그 불씨가 미국을 독립으로 이끌었고, 역사상 손꼽히는 강대국으로 키워냈으며, 만인의 눈에 신의 축복으로 비쳤다. 미국은 누군가에게 기대어 안주하는 나라로 세워지지 않았다. 자기 것을 스스로 일구겠다고 나선 정착민, 건국자, 발명가, 목회자, 기업가, 개척자들의 손으로 세워진 나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게감 있는 정치인이 으레 그렇듯 여전히 논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의 이름—승리(트럼프) 선장(도널드)—자체가 이 해에 묘하게 들어맞는다. 다만 진짜 질문은 어느 한 정권의 차원을 넘어선다. 상호의존이라는 말이 마치 미덕인 양 설파되는 이 시대에, 독립이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상호의존이라는 말은 얼핏 외교적으로 점잖게 들린다. 결국 누군가 다른 이의 손에 목줄이 쥐어진다는 뜻임을 깨닫기 전까지는. 물론 때로는 그것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처럼 여전히 자유를 굴복으로 길들이려는 세력이 존재하는 이 세계에서, 상호의존은 언제든 비단으로 감싼 쇠사슬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독수리를 엉뚱한 조련사의 손에 맡길 수는 없다. 이 독수리를 길들일 자격이 있는 이는 오직 하나, 그를 해방시키고 빚어내고 아버지가 되어준 하나님과 그가 임명하신 종들뿐이다.
올해 우리가 기리는 것은 의존도 상호의존도 아니다. 독립—땅 위에 임한 신적 주권, 바로 그것이다.
부디 미국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으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기를.” 주님의 계명에 귀 기울이는 한. 그리하면 이 독수리는 여전히 자유로이 창공을 가를 것이다.
미국 독립 250주년을 축하하며
A Message from the Publisher
변중화 | Publisher, The Unfold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