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May 18,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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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모리셔스 국가 장학생 – “우리 선생님, 줄리” 《我们的老师朱莉》

북경을 떠난지 약 12년 만에 서울에 온 줄리 선생님, 그리고 그의 학생들과의 만남. 우리 인생에 들어온 ‘줄리(Julie) 선생님’에 대한 짧은 이야기. Meeting Teacher Julie and her students in Seoul, about 12 years after leaving Beijing. A short story about ‘Teacher Julie’ who came into ou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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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선생님은 국가장학생이었다. 모리셔스 고등학생 국가 시험 예술과 언어 부문 전국 10등으로 북경중앙미술학원에 5년 국가장학금을 받고 중국에 왔다. 모리셔스는 아프리카 남단에 있는 작은 섬이다. 그때 나는 할리우드 배우들의 휴양지라고 언론에서 본적이 있을 뿐, 모리셔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Teacher. Julie was a national scholar. Julie was ranked 10th at the high school national exams in Mauritius in the Arts and Languages Category. She received a five-year full scholarship from China to study Fine Arts at the Central Academy of Fine Arts. Mauritius is a small island off the southern tip of Africa. At the time, I didn’t know anything about Mauritius except that it was a vacation spot for Hollywood actors. In fact, I still don’t know much about it now.

하람, 지수, 줄리, 정원, 관성 (2024년 4월 1일 서울에서) – 줄리 선거캠페인 사진같다고..

모리셔스 국가 장학생으로 미국, 유럽 또는 중국대학에 가려면 전국 10등 안에 들어야 한다는 것을 차후에 알았다. 그 선봉에 화교 3세들이 있는 것 같았다.  5천만 대한민국 전교 1등이 13억 중국 1등과 차이가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인구가 적더라도 모리셔스에서 전교 10등 안에 든다는 것은 상당한 두뇌와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NSB학생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제니퍼(Jennifer) 선생님을 비롯해, 줄리를 통해 알게 된 모리셔스 화교3세들이 모두 상상할 수 없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I later learned that in order to go to a U.S., European, or Chinese university as a Mauritian national scholar, they had to be in the top 10 in the country, with the third generation overseas Chinese leading the way. Considering that the top student in South Korea (50 million) is no different from the top student in China (1.3 billion), it must take a lot of brains and hard work to be in the top 10 in Mauritius, no matter how small the population. Jennifer, the teacher who terrorized NSB students, and the third generation Chinese Mauritians I got to know through Julie, were all unimaginably talented.

모리셔스인들은 생활은 불어로, 학교에서는 영어로 수업을 하고, 중국 화교인 줄리는 집에서는 중국어를 쓰고 자란 듯했다. 영어/불어는 아주 유창했고 중국어 소통도 문제가 없었다. 줄리는 대학시절에 중국 및 한국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때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Mauritians live their lives in French, school is taught in English, and Julie, an overseas Chinese, grew up speaking Chinese at home. She was very fluent in English/French and had no problem communicating in Chinese. During her college years in Beijing, Julie taught English part-time to Chinese and Korean college students. That’s when she realized that she enjoyed teaching.

줄리의 수업은 세밀하고 풍부했다. 수업 자료를 세세히 준비해 가르쳤다. 반면에 학생 마이클(중화)은 형편없었다. 반항적인 10대 남자애를 다룬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줄리는 역정내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만면에 웃음이 가득했다. Julie’s lessons were detailed and rich. She prepared and taught the material in detail. On the other hand, her student Michael (Joonghwa) was terrible. It’s not easy to deal with a rebellious teenage boy. But Julie was never angry. She always had a smile on her face.

줄리는 독실한 크리스찬이다. 중국 대륙에도 1억명 이상의 기독교인이 있는 걸로 알려졌지만, 줄리가 크리스찬이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좀 이상했다. 북경에 오래 거주하면서도 중국인 기독교인을 만날 기회가 거의 없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모리셔스에서 온 화교 3세가 크리스찬이라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우리집은 약 100년에 가까운 기독교 집안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어머님 선친 세대부터, 북한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기독교 신앙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4대인 지금까지 기독교 신앙은 모든 형제 자매 및 그 후손들에게 이어졌다. Julie is a devout Christian. Although there are reportedly more than 100 million Christians in mainland China, it was strange at first to realize that Julie is a Christian. Despite living in Beijing for a long time, I rarely met Chinese Christians. I didn’t say it out loud, but it seemed strange that a third-generation overseas Chinese from Mauritius was a Christian. My family has been Christian for nearly 100 years. From my mother’s side of the family, who came from North Korea, they embraced the Christian faith when it was first introduced to North Korea, and it has been passed down to all of my siblings and their descendants for four generations.

줄리는 온유하고 겸손하다. 악의와 독성이 없고 선하다. 처음 보았을 때의 인상처럼, 줄리의 ‘천진난만’은 퇴색된 적이 없었다. 사람들에게서 흔히 보이는 ‘욕심’을 줄리에게서 찾을 수 없었다. 지금껏 내가 만난 사람 중에서 ‘선한 사람’ 한 명을 꼽으라면 주저없이 ‘줄리(Julie)’일 것이다. Julie is meek and humble. She is good, not malicious and toxic. Julie’s “innocence” has never faded, as was my first impression. I couldn’t find the “greed” in her that I often see in people. If I had to name one “good” person I’ve ever met, it would be Julie without hesitation.

당시 북경에는 외국인을 위한 여러 형태의 학교가 있었다. 한국교육부에서 인정하는 ‘한국국제학교’가 북경 한인타운 ‘왕징’에 있었다. K-12 학제로 한국학교처럼 수업을 했고, 거의 한국대학으로 진학했다. At the time, there were several types of schools for foreigners in Beijing. The Korean International School, recognized by the Korean Ministry of Education, was located in Wangjing, a Korean neighborhood in Beijing. It was a K-12 school that taught like a Korean school, and almost all of its students went on to Korean universities.

일본, 독일, 프랑스 등 여러 국가의 국제학교(International School)가 있었으나, 한국회사 주재원 자녀 또는 사업가 자녀들은 미국 국제학교에서 공부했다. 미국 국제학교는 ‘왕징’ 근처에 몰려 있었다. 그만큼 한국학생들이 많았다. 국제학교 한국학생들 대부분은 ‘한국대학’이 목표였다. 아주 극소수만 미국대학을 준비했다. 어느 학교에 다니든 한국대학이 목표인 한국학생들은 내신성적에 중국어 HSK, Toelf은 기본, SAT, AP, 경시대회, 봉사활동 등 모든 것을 준비했다. There were international schools from Japan, Germany, France, and other countries, but the children of Korean expatriates or businessmen studied at American international schools. American international schools were clustered in the Wangjing neighborhood, so there were many Korean students. Most Korean students at international schools aimed for Korean universities. Only a very few prepared for American universities. Regardless of which school they attended, Korean students who wanted to go to Korean universities prepared for everything: HSK, Toelf, SAT, AP, competitions, volunteer work, etc.

HMCA (Harvard Model Congress Asia) – 홍콩대학에서 매년 개최, NSB학생은 싱가포르 대학(NUS) 1번, 홍콩대학 HMCA에 2번 참가했다
홍콩대학에서 개최된 ‘하버드모의국회 아시아(HMCAsia.org)’ 참가, 아시아 고등학교에서 약 500명 이상 학생 및 교사 참가. 최악의 게임돌이 ‘윤호(왼쪽2번째)’ 영어전형으로 북경대 광화관리(경제학부) 합격

중국대학에 진학하려는 한국(외국인) 학생들이 몰려들자, 북경시교육부는 북경내 명문 중고등학교를 선별해 ‘국제부’ 자격을 주었다. ‘국제부’ 자격이 있으면, 외국학생을 받을 수 있고, 학생비자를 줄 수 있었다. In response to the influx of Korean (foreign) students wanting to attend Chinese universities, the Beijing Municipal Education Department selected prestigious secondary schools in Beijing to receive the “International Department” status. With this status, they were able to accept foreign students and grant them student visas.

한중수교 10여 년이 지날 즈음, 중국에서 태어나거나 소학교(초등학교) 때부터 중국학교를 다닌 한국학생들이 있어, 북경의 명문 중고등학교 중국인 학생들과 공부하기도 했다. 이것을 ‘차반(插班)’이라고 한다. Around 10 years after the diplomatic relations between China and Korea, some Korean students who were born in China or had attended Chinese schools since elementary school were able to study with Chinese students at prestigious secondary schools in Beijing. This is called “chaban” (插班).

하지만, 중국대학들이 별도의 시험을 통해 외국학생을 뽑았기 때문에, 학교별 국제부는 외국인을 위한 별도의 클래스를 운영했다. 이는 중국인 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서 공부하려는 학생은 ‘영어반’을 운영하는 중국학교를 들어가기도 했다. 사회주의 교육체제가 상당히 융통성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However, because Chinese universities recruited foreign students through separate exams, the international departments of schools had separate classes for foreigners. This was also true for Chinese students. If a student wanted to study in the U.S., he or she might enroll in a Chinese school that had an “English class. I found the socialist education system to be quite flexible.

‘Sharon Society’ 팟캐스트 영어, 중국어, 한국어 방송 녹음 중..

‘중국 열광의 시기’에 자동차로 동서남북 5분도 걸리지 않는 한인타운 ‘왕징’에만 최소 2만 가구의 한국인 가정이 있었다. 북경 수도공항에서 20분거리에 있는 ‘왕징’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국제적으로 살고 싶으면 왕징을 가라!”는 말이 있었다. 마윈의 알리바바가 상해, 심천 등 경제 대도시를 버리고 ‘왕징’에 매머드 본사를 세웠을 정도이니, 왕징의 당대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During the “China Fever,” there were at least 20,000 Korean families in Wangjing, a Korean neighborhood less than five minutes’ drive from east to west and north to south. Located 20 minutes from Beijing Capital Airport, Wangjing was also famous among the Chinese. “If you want to live internationally, go to Wangjing!” was the saying. You can imagine how popular Wangjing was at the time when Jack Ma’s Alibaba ditched Shanghai, Shenzhen, and other economic metropolises to set up its mammoth headquarters in Wangjing.

민지는 뉴욕대와 이화여대 국제학부 동시 합격, 석원이는 고려대학, 벼리는 오사카대학 졸업 후 도쿄에서 컨설턴트로 근무, 성우는 성균관대, 이번 9월학기에 존스홉킨스 로봇공학 대학원 입학, 득환이는 가장 성적이 좋았으나 아이비에서 안뽑아줘서 선배형 따라 보스턴컬리지 진학, ‘숨마쿰라우데’로 졸업, 뉴욕대 및 컬럼비아 로스쿨 합격 후, 하버드 로스쿨 안됐다고 포기, 현재 벤처애널리스트로 활동 중, 량근이 인민대 재학 중 미국유학, 영주권 받고 미국 정착, 관성이는 북사대 재학 중 캠퍼스 커플로 연상 미인과 조기 결혼 생활 중..

아주 작은 사립 고등학교가 있었다. 한국, 미국과 달리 중국의 명문학교는 모두 공립이다. ‘4중(四中)’, ‘인대부중(人大附中)’이 특히 유명했다. 사립은 그리 많지 않고 유명세가 없었다. 200명이 채 되지 않는 이 작은 학교 중국학생들 대부분 한국과 미국대학을 준비했다. 하지만, 여느 중국 명문 고등학교처럼 ‘국제부’ 허가가 있었고 학생비자 발급이 가능했다. There was a very small private high school. Unlike South Korea and the United States, China’s top schools are all public. The “No.4 Middle and High School” and “Renmin University Affiliated Middle and High School” were especially famous. Private schools were few and far between and not well known. Most of the Chinese students at this small school of less than 200 students were preparing for Korean and American universities. However, like any other prestigious Chinese high school, it had an “International Department” license and was eligible for student visas.

상당수 학생들이 선교사 자녀, 거의 대부분 크리스찬이다

‘중국 격정의 시기’에 흙탕물 속에서 피어나는 연꽃처럼 특별한 클래스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그것을 ‘NSB’라 불렀다. 줄리는 NSB에서 영어회화, 에세이, 토플, SAT 등을 가르치는 첫번째 선생님이었다. “我们的老师朱莉”, 줄리는 ‘우리 선생님’이 되었다. Like a lotus blooming out of the mud, a special class was born during the “turbulent times in China”. We called it “NSB. Julie was the first teacher in NSB, teaching English conversation, essays, TOEFL, SAT, etc. “我们的老师朱莉”, Julie became “our teacher”.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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