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7,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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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이르시되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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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 요한계시록 3:15–16, 개역한글판(KRV)

천하(天下) —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부족한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 교회에 전해진 말씀은 자신을 다시 보라는 경고였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스스로 무엇을 이루었다고 말하는지보다 실제로 어떻게 행하고 있는지가 먼저라는 뜻이다.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는 말씀을 오늘의 정치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성경이 어느 정치적 선택을 가리켜 뜨겁다거나 차갑다고 판정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말씀 앞에서 개혁을 약속한 권력의 태도를 물을 수는 있다. 내란을 청산하고 개혁을 완수할 것인가. 아니면 그 약속을 거둘 것인가. 어느 길을 택하든 국민과 지지자 앞에 분명히 말하고 책임져야 한다.

가장 무책임한 길은 둘 다 하지 않는 것이다. 개혁을 말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내란 청산을 말하면서 남은 책임을 끝까지 묻지 않는 일이다. 약속은 그대로 둔 채 실행의 시기만 뒤로 보내면, 언젠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처럼 말한다. 이미 많은 것을 바꾸었다는 성과에 기대어, 남은 과제마저 가볍게 여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정치는 미지근해진다.

물론 개혁에는 숙고가 필요하다. 권력은 절차를 지켜야 하고, 반대하는 시민의 목소리도 들어야 한다. 그러나 숙고는 결정을 위한 과정이어야 한다. 결정을 피하기 위한 이름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엇을 바꿀지, 언제 바꿀지, 누가 책임질지 계속 말할 수 없다면 시민은 그 침묵을 선택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개혁을 하든지, 약속을 거두든지

더 넓은 다수를 만들겠다는 정치도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않다. 다수를 모으는 이유가 개혁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면, 그 힘을 써야 할 순간이 온다. 그 순간마다 다수를 잃을까 두려워 약속을 미룬다면, 다수는 목적을 잃는다. 오래 지지를 보내 온 시민에게는 기다리라고 하면서 새로 얻으려는 지지에는 불편한 말을 피하는 정치가 과연 누구에게 진실한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말씀은 매서운 책망 뒤에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는 요청을 둔다.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방향을 돌이키라는 뜻이다. 정치에 필요한 돌이킴도 거기서 시작한다. “이미 충분히 개혁하고 있다”는 자기평가를 내려놓고, 아직 미뤄 둔 일이 무엇인지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을 실행할 것인지 시민 앞에 밝히는 것이다.

개혁을 하겠다면 하라. 하지 않겠다면 약속을 거두고 그 책임을 져라. 포기를 허락하자는 말이 아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약속을 지키고 있는 듯 말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시민이 맡긴 권력을 쥐고 두 길 사이에 오래 서 있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르고, 그 시간을 견뎌야 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라오디게아를 향한 말씀은 행위를 묻는 데서 시작한다. 개혁을 약속한 권력에도 결국 같은 질문이 남는다.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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