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ROCCO — 아프리카 북서단에 자리한 모로코는 대서양과 지중해, 아틀라스산맥과 사하라사막이 만나는 나라다. 유럽과 아프리카를 잇는 지리적 위치를 바탕으로 아마지그·아랍·이슬람·안달루시아와 사하라 문화가 어우러진 독특한 문명을 발전시켰다.
북쪽 지브롤터해협 건너편에는 스페인이 있으며 동쪽과 남동쪽으로 알제리와 접한다. 남쪽의 서사하라는 모로코가 대부분을 실효 지배하지만 국제적 지위가 확정되지 않은 분쟁지역이다.
수도는 라바트, 최대 도시는 카사블랑카다. 공용어는 아랍어와 아마지그어이며 프랑스어도 행정·교육·경제에서 널리 사용된다. 화폐는 모로코디르함(MAD)이다.
세계은행과 유엔인구기금에 따르면 2025년 인구는 약 3,840만 명이다. 국가원수는 1999년 즉위한 무함마드 6세 국왕이며 정부수반은 아지즈 아하누시다. 모로코는 왕실이 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입헌군주국이다.
정치 수도 라바트와 경제도시 카사블랑카
대서양 연안의 라바트는 모로코의 정치·행정 수도다. 왕궁과 의회, 정부부처와 외국 대사관이 자리하며 중세 이슬람도시와 프랑스 보호령 시기의 계획도시가 함께 보존돼 있다.
라바트의 대표적인 건축물은 하산탑이다. 12세기 알모하드왕조가 세계 최대 규모의 모스크를 건설하려 했지만 통치자의 사망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미완성 첨탑과 수많은 돌기둥이 당시의 계획을 보여준다.
하산탑 맞은편의 무함마드 5세 영묘에는 독립을 이끈 무함마드 5세와 하산 2세가 안장돼 있다. 라바트의 우다야카스바에는 흰색과 푸른색으로 칠한 골목과 안달루시아식 정원이 남아 있다.
모로코 최대 도시는 남쪽의 카사블랑카다. 대서양의 항구를 중심으로 금융·무역·제조업이 발전했으며 대기업 본사와 증권거래소, 산업시설이 집중돼 있다.
카사블랑카의 하산 2세 모스크는 일부가 바다 위에 세워진 거대한 이슬람사원이다. 높이 약 210m의 첨탑과 정교한 모자이크·목공예·석고장식에는 전통 장인의 기술과 현대건축이 결합돼 있다.
영화 《카사블랑카》로 세계에 알려졌지만 영화는 대부분 미국에서 촬영됐다. 실제 카사블랑카는 낭만적인 식민도시의 이미지를 넘어 산업과 교통, 이주와 현대문화가 움직이는 거대도시다.
페스와 마라케시, 탕헤르의 서로 다른 얼굴
페스는 모로코의 종교와 전통학문, 수공예를 대표하는 도시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메디나 안에는 모스크와 마드라사, 시장·공방과 전통가옥이 자리한다.
859년 설립된 알카라위인 모스크와 교육기관은 이슬람권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학문의 중심지 가운데 하나다. 꾸란과 이슬람법, 문법·논리학과 천문학 등이 교육됐다.
마라케시는 붉은 흙으로 지은 성벽과 건물이 많아 ‘붉은 도시’라고 불린다. 제마엘프나광장에는 음식노점과 음악가, 이야기꾼과 상인들이 모이며 광장 자체의 문화공간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았다.
북쪽의 탕헤르는 지브롤터해협에 면한 항구도시다. 오랫동안 유럽과 아프리카, 대서양과 지중해가 만나는 국제적인 관문이었다. 20세기에는 국제관리지역이 되어 외교관과 상인, 예술가와 망명자들이 모였다.
오늘날 탕헤르는 대형 항만 탕헤르메드와 자동차산업, 물류를 중심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역사적인 국제도시의 이미지와 현대적인 산업도시의 기능이 공존한다.
남서부의 아가디르는 해변관광과 수산업의 중심지다. 1960년 대지진으로 도시 대부분이 파괴된 뒤 현대적인 계획도시로 재건됐다.
리프산맥과 아틀라스산맥
모로코 북부에는 지중해를 따라 리프산맥이 이어지고 국토 중앙에는 중부·고·안티아틀라스 산맥이 뻗어 있다. 산맥은 대서양 연안과 사하라의 기후를 나누며 강과 농업, 교통과 주민 생활에 큰 영향을 준다.
고아틀라스산맥의 투브칼산은 높이 약 4,167m로 모로코와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겨울에는 정상과 고지대에 눈이 쌓이며 이 눈과 강수는 봄철 농업과 도시의 중요한 수원이 된다.
산간마을의 주민들은 계단식 밭에서 보리와 밀·호두·과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른다. 많은 지역에서 아마지그 언어와 공동체 문화가 강하게 이어진다.
2023년 9월 고아틀라스산맥에서 강한 지진이 발생해 수많은 주민이 숨지고 마을과 역사건축물이 파괴됐다. 진앙과 가까운 산간지역은 접근이 어려워 구조와 복구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전통적인 흙집은 지역의 기후와 재료에 적응한 건축이지만 강한 지진에 취약할 수 있다. 재건 과정에서는 내진성능을 높이면서도 공동체의 건축문화와 생활방식을 보존하는 문제가 중요하게 떠올랐다.
대서양과 지중해를 모두 품은 나라
모로코는 대서양과 지중해에 긴 해안선을 가진다. 대서양 연안에는 라바트·카사블랑카·엘자디다·에사우이라·아가디르 등 주요 도시와 항구가 발달했다.
북쪽 지중해 연안은 유럽과 매우 가깝다. 모로코의 탕헤르와 스페인의 타리파 사이 지브롤터해협은 가장 좁은 곳이 약 14㎞에 불과하다. 맑은 날에는 양쪽 대륙에서 맞은편 해안을 볼 수 있다.
모로코 북쪽 해안에는 스페인이 통치하는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스페인은 두 도시를 자국 영토로 보지만 모로코는 식민지배의 잔재라며 영유권을 주장한다.
대서양 연안은 정어리와 고등어·문어 등의 어장이 형성돼 있어 수산업이 중요하다. 그러나 해양자원과 서사하라 인근 해역의 어업권을 둘러싸고 유럽연합과 모로코, 서사하라 주민 대표성에 관한 법적 논쟁도 이어져 왔다.
사하라로 이어지는 오아시스와 카스바
아틀라스산맥을 넘어 남동쪽으로 가면 강수량이 급격히 줄어들면서 돌사막과 모래언덕, 오아시스가 나타난다. 메르주가의 에르그셰비는 거대한 모래언덕으로 유명하다.
드라강과 지즈강 유역의 오아시스에서는 대추야자와 곡물·채소를 재배한다. 주민들은 지하수로와 공동 수로를 이용해 제한된 물을 나누며 생활해왔다.
사막과 산악지역에는 흙과 짚을 섞어 지은 성채와 마을이 남아 있다. 방어용 요새저택을 카스바, 성벽으로 둘러싸인 공동마을을 크사르라고 부른다.
아이트벤하두는 모로코를 대표하는 크사르다. 붉은 흙으로 지은 탑과 주택이 언덕을 따라 이어지며 사하라와 마라케시를 연결하던 대상무역로의 중간 거점이었다.
독특한 풍경 때문에 《글래디에이터》와 여러 국제영화·드라마가 이곳과 인근 와르자자트에서 촬영됐다. 와르자자트에는 대형 영화촬영소가 있어 ‘사막의 할리우드’라고도 불린다.
모로코의 뿌리, 아마지그인
모로코와 북아프리카에는 아랍인의 도래 이전부터 아마지그인이 살아왔다. 유럽에서는 오랫동안 ‘베르베르’라고 불렀지만 당사자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을 뜻하는 ‘이마지겐’ 또는 단수형 ‘아마지그’라는 명칭을 선호한다.
모로코의 아마지그 언어는 지역에 따라 타리피트어·중부아틀라스 타마지그트어·타셸히트어 등으로 나뉜다. 2011년 헌법은 아마지그어를 아랍어와 함께 국가의 공용어로 인정했다.
아마지그어는 티피나그문자로 표기된다. 학교와 공공기관, 도로표지에 아마지그어 사용이 확대됐지만 교사와 교재 부족, 지역별 언어 차이 때문에 실제 보급 속도는 고르지 않다.
아마지그문화는 언어뿐 아니라 직물과 장신구, 음악·건축·농업과 공동체의 관습에 남아 있다. 여성들이 짠 카펫의 기하학무늬에는 지역과 부족, 가족의 기억과 상징이 담기기도 한다.
현대 모로코인은 아마지그와 아랍이라는 두 범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오랜 혼인과 이주, 언어 변화로 많은 사람이 두 문화의 유산을 함께 지닌다.
아랍어와 다리자, 프랑스어가 공존하는 사회
모로코의 공용어인 아랍어는 공식문서와 종교·교육에서 사용된다. 그러나 일상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언어는 모로코식 아랍어인 다리자다.
다리자는 아랍어를 바탕으로 아마지그어와 프랑스어·스페인어 등의 영향을 받았다. 중동의 표준아랍어 사용자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발음과 어휘가 다른 경우도 있다.
프랑스어는 공식적인 공용어는 아니지만 기업과 금융·과학기술·고등교육, 행정의 일부에서 강한 영향력을 유지한다. 북부와 옛 스페인령 지역에서는 스페인어도 사용된다.
영어는 청년층과 관광·디지털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교육언어를 아랍어·아마지그어·프랑스어·영어 가운데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는 사회적 논쟁의 대상이다.
종교적으로는 수니파 이슬람교가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한다. 국왕은 정치적 군주인 동시에 ‘신자들의 통솔자’라는 종교적 지위를 가진다. 유대교와 기독교 공동체도 존재하며 모로코 유대인의 문화유산은 음악과 음식·도시건축에 큰 흔적을 남겼다.
로마도시 볼루빌리스와 이드리스왕조
고대 모로코에는 여러 아마지그왕국이 존재했다. 페니키아와 카르타고 상인들은 해안에 교역거점을 세웠고 이후 로마제국은 북부를 마우레타니아 팅기타나속주로 통치했다.
메크네스 인근의 볼루빌리스는 로마시대의 대표적인 도시유적이다. 개선문과 주택, 올리브기름 작업장과 화려한 모자이크가 남아 있다. 로마의 지배가 끝난 뒤에도 주민들의 생활은 이어졌다.
8세기 말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으로 여겨지는 이드리스 1세가 아바스왕조를 피해 모로코로 왔다. 그는 현지 아마지그 부족의 지지를 받아 이드리스왕조를 세웠다.
이드리스왕조는 모로코 최초의 이슬람왕조로 평가되며 페스가 정치와 종교, 상업의 중심도시로 성장하는 기반을 마련했다. 모로코의 이슬람화와 아랍어 확산은 한 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세기에 걸쳐 진행됐다.
사하라를 넘은 알모라비드와 알모하드
11세기 사하라 서부의 산하자계 아마지그 세력을 기반으로 알모라비드왕조가 등장했다. 이들은 대상무역로를 장악하고 마라케시를 수도로 건설했다.
알모라비드는 모로코뿐 아니라 오늘날 모리타니와 알제리 일부, 서아프리카와 이베리아반도의 알안달루스까지 영향력을 확대했다. 사하라의 금과 소금, 지중해 교역을 연결하는 광대한 국가를 형성했다.
12세기에는 고아틀라스의 아마지그 세력에서 출발한 알모하드왕조가 알모라비드를 무너뜨렸다. 알모하드는 마라케시의 쿠투비아모스크와 라바트의 하산탑, 스페인 세비야의 히랄다탑처럼 서로 닮은 거대한 첨탑을 건설했다.
이 시기 모로코와 알안달루스의 학자·건축가·장인과 상인들이 지브롤터해협을 오갔다. 안달루시아의 음악과 정원·건축·음식문화는 이후 모로코의 도시문화에 깊은 영향을 남겼다.
페스의 마린왕조와 사디왕조
13세기부터 마린왕조는 페스를 수도로 삼아 모로코를 통치했다. 도시에는 이슬람법과 종교학을 가르치는 마드라사가 세워졌으며 정교한 젤리지 타일과 목조·석고 장식이 발전했다.
15세기 이후 포르투갈과 스페인은 모로코의 대서양·지중해 연안에 요새와 항구를 확보했다. 해안의 유럽 세력과 내륙의 왕조 사이에서 전쟁과 교역이 동시에 이어졌다.
16세기 사디왕조는 포르투갈 세력에 맞서며 모로코를 재통일했다. 1578년 알카세르키비르 전투에서는 포르투갈 국왕 세바스티앙이 전사했고 포르투갈은 이후 왕위계승 위기에 빠졌다.
아흐마드 알만수르는 사하라를 넘어 송가이제국을 공격하고 금과 교역로를 장악하려 했다. 마라케시의 엘바디궁전과 사디왕릉은 왕조의 부와 예술을 보여준다.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알라위왕조
17세기 중반 등장한 알라위왕조는 현재까지 모로코를 통치한다. 왕조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후손이라는 종교적 정통성을 강조했다.
물라이 이스마일은 메크네스를 수도로 삼고 중앙집권체제를 강화했다. 그는 궁전과 성벽·창고·마구간을 건설해 메크네스를 거대한 왕도로 발전시켰다.
19세기 유럽 열강의 군사·경제적 압력이 커지면서 모로코의 주권은 약화됐다. 프랑스는 알제리와 서아프리카에서 세력을 확대했고 스페인은 북부와 남부 해안에 영향력을 행사했다.
1912년 페스조약으로 모로코 대부분은 프랑스 보호령이 됐다. 북부와 남부 일부는 스페인 보호령으로 분리됐고 탕헤르는 국제관리지역이 됐다.
형식적으로 술탄과 왕조는 유지됐지만 실제 행정과 군사·경제의 핵심은 프랑스와 스페인이 통제했다.
리프전쟁과 독립
북부 리프지역에서는 아브드엘크림이 스페인의 식민지배에 맞서 저항했다. 1921년 그의 군대는 안우알전투에서 스페인군에 큰 패배를 안기고 리프공화국을 세웠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대규모 병력과 무기를 투입해 리프공화국을 진압했다. 전쟁 과정에서 스페인군이 화학무기를 사용한 사실도 역사적 문제로 남아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운동이 확대됐고 술탄 무함마드 5세는 민족주의 세력의 상징이 됐다. 프랑스는 그를 국외로 추방했지만 저항이 더욱 커지자 1955년 귀환을 허용했다.
모로코는 1956년 프랑스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다. 무함마드 5세는 1957년 술탄에서 국왕으로 칭호를 바꿨고 현대 모로코왕국의 기반을 세웠다.
일부 지역은 독립과 동시에 반환되지 않았다. 모로코는 이후 탕헤르와 타르파야, 이프니 등을 단계적으로 통합했으며 세우타·멜리야와 서사하라 문제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하산 2세와 ‘납의 시대’
1961년 즉위한 하산 2세는 강한 왕권을 바탕으로 국가를 통치했다. 그는 의회와 정당을 유지했지만 국왕이 군과 안보·외교·종교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과 활동가들이 체포·고문되거나 실종됐다. 이 시기는 모로코에서 ‘납의 시대’라고 불린다.
1971년과 1972년에는 국왕을 겨냥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지만 실패했다. 이후 왕실은 군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다.
하산 2세는 서방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중동 외교에서 중재자 역할을 시도했다. 경제와 기반시설도 발전했지만 도시와 농촌의 격차, 빈곤과 정치적 억압이 함께 존재했다.
1990년대에는 정치범 석방과 야당의 정부 참여 등 제한적인 개혁이 진행됐다. 하산 2세는 1999년 사망했고 아들 무함마드 6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개혁과 강한 왕권이 공존하는 정치
무함마드 6세는 즉위 이후 여성의 법적 권리 확대와 빈곤감소, 기반시설과 산업개발을 추진했다. 과거 국가폭력의 피해를 조사하고 보상하기 위한 공정화해위원회도 설치했다.
2004년 개정된 가족법 무다와나는 결혼과 이혼·양육에서 여성의 권리를 확대했다. 그러나 상속과 일부 가족법에서는 여전히 남녀 간 차이가 남아 있으며 실제 권리 보장은 지역과 경제적 조건에 따라 달라진다.
2011년 아랍권 민주화운동의 영향으로 모로코에서도 ‘2월 20일 운동’이 정치개혁과 부패척결, 사회정의를 요구했다.
국왕은 국민투표를 통해 새 헌법을 도입했다. 총리는 총선에서 가장 많은 의석을 얻은 정당에서 임명하도록 하고 의회와 정부의 권한을 확대했다. 아마지그어도 공용어로 인정했다.
그러나 국왕은 군과 안보·종교, 전략적 외교와 주요 경제정책에서 강한 권한을 유지한다. 왕실과 연관된 경제적 네트워크의 영향력,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관한 논쟁도 계속된다.
현재 정부수반인 아지즈 아하누시는 기업인 출신으로 국민독립연합을 이끌어 2021년 총선 후 정부를 구성했다.
복잡한 서사하라 문제
서사하라는 모로코 남쪽의 대서양 연안에 자리한 지역이다. 과거 스페인의 식민지였으며 1975년 스페인이 철수하는 과정에서 영유권 분쟁이 본격화됐다.
하산 2세는 1975년 수십만 명의 민간인을 국경으로 행진시킨 ‘녹색행진’을 실시했다. 모로코는 서사하라가 역사적으로 모로코왕국과 연결돼 있었다고 주장하며 대부분의 지역을 편입했다.
서사하라 독립을 주장하는 폴리사리오전선은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을 선포하고 모로코와 전쟁을 벌였다. 사하라아랍민주공화국은 아프리카연합 회원국이며 일부 국가의 승인을 받고 있다.
모로코는 방벽을 건설해 라윤·다클라 등 주요 도시와 대서양 연안을 포함한 서사하라 대부분을 통제한다. 폴리사리오전선은 방벽 동쪽의 인구가 희박한 지역 일부를 통제하며 많은 사흐라위 난민은 알제리 틴두프 인근 캠프에서 생활한다.
유엔은 서사하라를 아직 탈식민화가 완료되지 않은 비자치지역으로 분류한다. 1991년 휴전과 주민투표를 지원하기 위해 유엔서사하라주민투표임무단이 설치됐지만 유권자 자격과 투표 선택지를 둘러싼 갈등으로 주민투표는 열리지 못했다.
모로코는 자국 주권 아래 광범위한 자치를 부여하는 방안을 제안한다. 폴리사리오전선은 독립을 선택지에 포함한 주민투표를 요구한다. 2020년 휴전이 무너진 뒤 낮은 강도의 무력충돌도 이어졌다.
따라서 서사하라를 단순히 모로코의 확정된 남부 영토로 표시하거나 완전히 독립된 국가로 단정하는 것은 국제적 현실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다.
미로 같은 메디나와 리아드
모로코의 오래된 도시 중심부를 메디나라고 부른다. 높은 성벽 안에 좁은 골목과 시장, 모스크·학교·공방·목욕탕과 주택이 밀집해 있다.
메디나의 골목은 자동차보다 사람과 가축의 이동에 맞춰 형성됐다. 외부 침입과 강한 햇빛을 막고 공동체와 상업공간을 긴밀하게 연결한다.
전통주택인 리아드는 바깥벽에 창문이 거의 없고 중앙의 안뜰을 향해 방이 배치된다. 안뜰에는 분수와 오렌지나무, 타일과 정원이 있어 더운 기후에서 공기를 식히고 가족의 사생활을 보호한다.
모로코 건축을 대표하는 장식은 젤리지다. 색유약을 입힌 타일을 작은 기하학 형태로 잘라 복잡한 모자이크를 만든다. 조각한 석고와 삼나무 목공예, 매끄럽게 마감한 타델락트 회벽도 널리 사용된다.
전통 목욕탕인 함맘은 몸을 씻는 공간이면서 이웃과 소식을 나누고 결혼·출산을 준비하는 사회적 공간이었다.
아홉 곳의 세계유산
모로코에는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아홉 곳 있다. 모두 문화유산으로, 왕조와 교역·종교·식민도시의 역사를 보여준다.
페스와 마라케시·테투안·에사우이라의 메디나, 메크네스 역사도시와 라바트, 포르투갈 요새도시였던 엘자디다의 마자간이 세계유산에 포함된다.
아이트벤하두는 사하라 교역로의 흙건축 마을을 보여주며 볼루빌리스는 로마와 아마지그, 초기 이슬람 시대의 역사가 겹친 고고유적이다.
에사우이라는 대서양 무역을 위해 18세기에 계획된 항구도시다. 유럽식 군사건축과 북아프리카의 메디나가 결합했으며 무슬림과 유대인·유럽 상인들이 함께 활동했다.
테투안은 스페인의 레콩키스타 이후 이베리아반도에서 건너온 무슬림과 유대인이 재건한 도시다. 안달루시아 건축과 북부 모로코문화의 연결을 보여준다.
라바트 세계유산은 중세 유적과 프랑스 보호령 시기에 조성된 신시가지를 함께 포함한다. 서로 다른 시대의 도시계획이 한 공간에서 공존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나와와 안달루시아 음악
모로코 음악은 아마지그와 아랍·안달루시아·사하라와 아프리카 남부의 전통이 만난 결과다.
안달루시아 고전음악은 중세 이베리아반도의 알안달루스에서 발전한 음악을 계승한다. 스페인에서 추방된 무슬림과 유대인 공동체가 모로코로 이주하면서 페스와 테투안·셰프샤우엔 등에서 전승됐다.
그나와음악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북아프리카로 이동하거나 노예로 끌려온 사람들의 후손이 발전시킨 영적 음악이다. 낮은 음의 현악기 겜브리와 금속 캐스터네츠 크라케브, 반복되는 노래와 춤을 사용한다.
그나와 의식에서는 음악과 향, 색을 통해 치유와 영적 교감을 추구한다. 오늘날에는 재즈와 록·전자음악과 결합해 세계적인 음악축제에서 연주된다. 에사우이라의 그나와세계음악축제가 대표적이다.
대중음악에서는 도시민의 삶과 사랑을 노래하는 샤비가 널리 사랑받는다. 힙합과 록·전자음악을 통해 실업과 불평등, 젠더와 정치 문제를 표현하는 청년 음악가들도 등장했다.
카펫과 가죽, 장인의 나라
모로코의 시장인 수크에는 카펫과 가죽제품, 도자기·금속등·바구니와 향신료가 가득하다. 지역마다 재료와 무늬, 제작방식이 다르다.
아마지그 여성들이 짜는 카펫에는 다이아몬드와 지그재그, 인간과 동물을 단순화한 문양이 나타난다. 일부 문양은 보호와 출산·가족, 자연과 공동체를 상징한다.
페스의 가죽염색장은 수백 년 동안 전통적인 방식으로 가죽을 처리해왔다. 원형 돌통에 석회와 염료를 넣고 가죽을 담가 색을 입힌다. 강한 냄새와 열악한 노동환경, 폐수처리 문제도 있어 전통산업과 환경·노동 보호를 함께 개선해야 한다.
사피와 페스는 도자기로 유명하다. 푸른색과 녹색·흰색의 기하학 또는 식물무늬가 접시와 타진용기, 타일에 그려진다.
수공예산업은 많은 일자리와 관광수입을 제공하지만 값싼 대량생산품과 중간상인의 유통구조 때문에 실제 장인이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타진과 쿠스쿠스, 민트차의 식탁
모로코 음식은 아마지그와 아랍·안달루시아·지중해·사하라의 식재료와 조리법이 결합돼 있다. 올리브유와 향신료, 보존레몬·대추야자·견과류와 허브를 널리 사용한다.
타진은 원뿔 모양의 뚜껑을 가진 토기와 그 안에서 조리한 음식을 모두 가리킨다. 닭고기와 보존레몬·올리브, 양고기와 자두·아몬드, 생선과 채소 등 다양한 재료를 약한 불에서 천천히 익힌다.
쿠스쿠스는 작은 세몰리나 알갱이를 쪄서 채소와 고기, 병아리콩과 국물을 곁들인 음식이다. 금요일 공동식사와 가족행사에서 중요하며 모로코·알제리·튀니지·모리타니의 쿠스쿠스 전통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하리라는 토마토와 렌틸콩·병아리콩, 고기와 허브를 넣은 수프다. 라마단 기간 해가 진 뒤 대추야자와 함께 금식을 끝내는 음식으로 자주 먹는다.
파스티야는 얇은 반죽 안에 비둘기나 닭고기, 아몬드와 향신료를 넣고 설탕과 계피를 뿌리는 음식이다. 짠맛과 단맛이 함께 나타나는 안달루시아계 도시음식의 특징을 보여준다.
모로코식 민트차는 녹차에 신선한 민트와 설탕을 넣어 만든다. 높은 곳에서 잔에 따르며 손님에게 차를 내는 행위는 환대와 대화의 상징이다.
아르간나무가 만든 생활문화
모로코 남서부에는 아르간나무가 자란다. 건조한 환경과 척박한 토양을 견디며 토양침식과 사막화를 막는 역할을 한다.
아르간열매의 씨에서 추출한 기름은 음식과 화장품에 사용된다. 식용 아르간기름은 씨를 볶아 고소한 맛을 내고, 꿀과 아몬드를 섞은 아믈루는 빵에 발라 먹는다.
전통적으로 아르간기름 생산은 여성들이 담당해왔다. 여성협동조합은 소득과 교육기회를 제공하고 아르간숲 보호에 대한 인식을 높였다.
그러나 세계적인 화장품 수요가 늘면서 원료 가격과 토지 이용이 변하고 나무의 과도한 이용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생산수익을 지역 여성과 농가에 공정하게 돌려주는 일이 중요하다.
아르간과 관련된 지식과 관습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돼 있다.
인산염에서 자동차까지
모로코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평가되는 인산염 매장량을 보유한다. 인산염은 농업용 비료의 핵심 원료이며 국영기업 OCP가 채굴과 가공·수출을 담당한다.
인구 증가와 식량안보로 비료의 전략적 중요성이 커지면서 모로코의 국제적 영향력도 높아졌다. 그러나 채굴과 화학가공에는 많은 물과 에너지가 필요하고 지역 환경과 노동조건을 관리해야 한다.
최근 모로코는 자동차와 항공부품·전자·섬유산업을 빠르게 발전시켰다. 탕헤르와 케니트라의 자동차공장에서는 유럽과 아프리카 시장으로 수출할 차량을 생산한다.
유럽과 가까운 위치, 자유무역협정과 항만·도로 인프라, 비교적 낮은 인건비가 제조업 투자를 끌어들였다. 탕헤르메드항은 아프리카와 지중해의 대표적인 컨테이너·자동차 수출항으로 성장했다.
카사블랑카 주변에는 항공기 배선과 부품·정비 관련 기업이 모여 있다. 디지털서비스와 스타트업, 금융과 물류도 새로운 성장분야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5년 국내총생산은 약 1,824억 달러, 1인당 국내총생산은 약 4,673달러다.
농업과 관광의 두 얼굴
모로코 농업에서는 밀과 보리, 올리브·감귤류·토마토·감자·포도와 사탕무 등을 생산한다. 농업은 농촌 고용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강수량에 크게 의존한다.
비가 충분한 해에는 경제성장률과 농촌소득이 높아지고 가뭄이 발생하면 곡물 수확과 축산업이 큰 피해를 입는다. 대형 수출농장과 관개시설을 이용하는 농가, 비에 의존하는 소농 사이의 격차도 크다.
관광은 모로코의 주요 외화수입원이다. 마라케시와 페스의 메디나, 사하라 여행과 대서양 해변·아틀라스 트레킹이 방문객을 끌어들인다.
전통주택을 개조한 리아드호텔과 음식·수공예 체험은 지역경제에 도움을 준다. 반면 관광지의 주택가격 상승과 주민 이주, 물 사용과 폐기물 증가, 문화의 상업화 문제도 나타난다.
모로코는 2030년 스페인·포르투갈과 함께 FIFA 월드컵을 공동 개최할 예정이다. 경기장과 철도·공항·도시 기반시설에 대한 투자가 확대되고 있지만 대형 행사 비용과 주민 생활·공공서비스 사이의 균형도 중요하다.
태양광과 녹색에너지의 실험
모로코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기 때문에 에너지 안보를 위해 태양광과 풍력발전을 확대하고 있다.
와르자자트의 누르 태양광단지는 세계적으로 규모가 큰 태양에너지 시설 가운데 하나다. 거울로 태양열을 모아 전력을 생산하는 집광형 태양열발전과 태양광발전 설비가 함께 운영된다.
대서양 연안과 탕헤르지역에는 풍력발전단지가 들어서 있다. 모로코는 재생에너지로 국내 전력을 공급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유럽에 청정전력이나 그린수소를 수출하는 구상을 추진한다.
그러나 대규모 발전시설이 건설되는 토지와 물을 누가 사용하고 지역 주민이 어떤 혜택을 받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서사하라 지역의 풍력·태양광 사업은 영토의 지위와 주민 동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물 부족과 지역 간 격차
모로코는 반복되는 가뭄과 강수량 감소, 지하수의 과잉 이용으로 심각한 물 부족을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눈과 비가 줄어들면 아틀라스산맥에서 평야로 공급되는 물도 감소한다.
도시와 관광지, 수출농업과 산업 사이에서 물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정부는 댐과 해수담수화시설, 도시 간 송수관과 절수형 관개시설을 확대하고 있다.
해수담수화는 해안도시의 물을 확보할 수 있지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염분이 높은 부산물을 바다에 배출하는 문제가 있다. 물을 더 공급하는 것뿐 아니라 농업과 도시에서 낭비를 줄이고 지하수를 보호해야 한다.
대도시와 농촌, 대서양 산업축과 내륙 산악지역의 발전 격차도 크다. 농촌의 교육과 의료·교통 접근성이 낮고 청년실업과 비공식 노동이 중요한 사회문제로 남아 있다.
유럽에 거주하는 모로코계 이주민이 보내는 송금은 많은 가정과 국가경제에 중요하다. 세계은행 자료에서 2025년 개인송금 수입은 국내총생산의 약 7.5%에 해당한다.
유럽으로 향하는 관문
모로코는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향하는 가장 중요한 이주 경로 가운데 하나다. 모로코인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는 동시에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출신 이주민이 모로코를 통과하거나 정착한다.
세우타와 멜리야 주변에는 높은 국경장벽이 설치돼 있다. 위험한 바닷길이나 장벽을 넘어 유럽으로 가려는 과정에서 사고와 인권침해가 발생하기도 한다.
유럽연합은 모로코와 국경관리와 불법이주 방지를 위해 협력한다. 그러나 유럽의 국경을 외부 국가에 맡기면서 이주민의 권리와 난민보호가 약화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모로코는 아프리카 국가들과 외교·투자관계를 확대하고 서아프리카 학생과 이주민을 받아들이고 있다. 자신을 유럽과 아랍세계뿐 아니라 아프리카의 핵심 국가로 자리매김하려는 전략이다.
전통과 현대가 끊임없이 협상하는 나라
모로코는 유럽에서 불과 14㎞ 떨어져 있지만 단순히 유럽과 가까운 북아프리카 국가로 설명할 수 없다. 사하라 교역과 아마지그 공동체, 이슬람왕조와 안달루시아 이주민의 역사가 국가의 문화를 형성했다.
왕실은 오랜 역사의 연속성과 정치적 안정의 상징이다. 동시에 국왕에게 집중된 권력과 경제적 영향력, 표현의 자유와 정치적 참여에 관한 논쟁도 존재한다.
자동차와 항공부품·재생에너지산업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농촌 빈곤과 청년실업, 물 부족과 지역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 서사하라 문제 역시 모로코의 외교와 국가정체성, 북아프리카 지역관계를 결정하는 핵심 과제로 남아 있다.
페스의 장인과 아틀라스산맥의 농민, 카사블랑카의 공장노동자와 탕헤르의 항만은 서로 다른 모로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은 전통과 세계화, 왕국의 역사와 현대산업을 하나의 국가 안에서 연결한다.
모로코는 단순히 사막과 낙타, 미로 같은 시장의 나라가 아니다. 아마지그의 뿌리와 이슬람왕조의 역사, 대서양의 항구와 현대 제조업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유럽·아랍세계를 연결하는 마그레브의 핵심 국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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