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iechtenstein —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사이 알프스산맥에 자리한 리히텐슈타인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가운데 하나다. 국토는 대한민국 서울 면적의 약 4분의 1에 불과하지만 정밀기계와 치과기술·전자제품·금융산업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생활수준을 이룩했다.
서쪽과 남쪽으로 스위스, 동쪽과 북쪽으로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맞대는 내륙국이다.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역시 바다와 접하지 않은 국가이기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은 우즈베키스탄과 함께 세계에서 단 두 곳뿐인 ‘이중 내륙국’이다. 바다로 가려면 반드시 두 개 이상의 국경을 넘어야 한다.
공식 국호는 리히텐슈타인공국이며 수도는 파두츠, 가장 큰 지방자치단체는 샨이다. 공용어는 독일어이고 화폐는 스위스 프랑(CHF)을 사용한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5년 인구는 약 4만1,000명이다.
국가원수는 1989년 즉위한 한스아담 2세 공이다. 다만 2004년부터 장남인 알로이스 세자가 국가원수의 일상적인 권한을 섭정으로서 수행하고 있다. 정부수반은 2025년 취임한 브리기테 하스로, 리히텐슈타인 최초의 여성 총리다.
성 아래 자리한 수도 파두츠
수도 파두츠는 라인강 동쪽의 넓은 계곡과 알프스산맥 사이에 자리한다. 인구는 약 6,000명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작은 수도 가운데 하나다.
도시를 내려다보는 산비탈에는 파두츠성이 있다. 중세에 건설된 뒤 여러 차례 확장됐으며 현재 리히텐슈타인 공가의 공식 거주지로 사용된다.
파두츠성은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지만 내부는 일반 관광객에게 공개되지 않는다. 성으로 올라가는 산책로와 전망대에서는 라인강 계곡과 스위스 알프스, 파두츠 시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도심의 슈테틀레 거리에는 정부청사와 의회, 리히텐슈타인국립박물관·미술관·우편박물관이 모여 있다. 자동차 통행을 제한한 짧은 거리 안에서 한 나라의 주요 정치·문화기관을 대부분 만날 수 있다.
파두츠대성당으로 불리는 성 플로린성당은 19세기 신고딕양식으로 건설됐다. 리히텐슈타인 대교구의 중심성당이며 역대 공가 인물들이 안장된 묘지가 옆에 있다.
파두츠는 수도지만 나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은 아니다. 북쪽의 샨이 더 많은 주민과 기업·산업시설을 갖춘 경제 중심지다.
서울보다 훨씬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의 국토면적은 약 160㎢다. 남북 길이는 약 25㎞, 동서 폭은 가장 넓은 곳도 약 12㎞에 불과하다.
유럽에서는 바티칸시국·모나코·산마리노에 이어 네 번째로 작고, 세계적으로도 여섯 번째로 작은 주권국가다. 자동차나 자전거를 이용하면 하루 안에 나라의 주요 마을을 둘러볼 수 있다.
국토는 크게 서쪽의 라인강 계곡과 동쪽의 알프스산지로 나뉜다. 주민과 기업·농경지 대부분은 평탄한 라인강 계곡에 집중돼 있다.
라인강은 리히텐슈타인과 스위스 사이의 국경 대부분을 이룬다. 과거에는 홍수가 자주 발생했지만 제방과 수로정비를 통해 농지와 주거지역이 확대됐다.
동부의 산지는 레티콘산맥의 일부다. 리히텐슈타인 최고봉은 해발 2,599m의 그라우슈피츠이며, 남동부 말분은 스키와 등산으로 유명한 산악휴양지다.
알프스에서 불어 내려오는 따뜻하고 건조한 푄바람은 계곡의 기온을 높인다. 덕분에 높은 위도와 산악지형에도 포도와 옥수수를 재배할 수 있다.
열한 개 지방자치단체의 나라
리히텐슈타인은 파두츠·샨·발처스·트리젠·트리젠베르크·플랑켄·에셴·마우렌·감프린·루겔·셸렌베르크 등 11개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된다.
나라 전체는 전통적으로 오버란트와 운터란트라는 두 선거구로 나뉜다. ‘윗지역’을 뜻하는 오버란트에는 파두츠와 샨·발처스 등 여섯 개 지방자치단체가, ‘아랫지역’ 운터란트에는 에셴과 마우렌·셸렌베르크 등 다섯 개가 속한다.
오버란트와 운터란트의 구분은 단순한 방위표시가 아니다. 현재의 리히텐슈타인이 만들어지기 전 존재했던 파두츠백작령과 셸렌베르크영지를 계승한다.
발처스의 구텐베르크성은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중세성곽이다. 공가의 거주지인 파두츠성과 달리 성 안뜰과 일부 공간이 문화행사에 활용된다.
라인강변의 루겔과 감프린에는 습지와 농경지가 펼쳐지고, 산지의 트리젠베르크에는 독특한 방언과 문화를 지닌 발저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독일어 속에 살아 있는 알레만 방언
리히텐슈타인의 공식 언어는 독일어다. 독일어만을 유일한 공용어로 사용하는 국가 가운데 규모가 가장 작다.
학교와 정부·법률·신문에서는 표준독일어를 사용하지만 주민들의 일상언어는 알레만계 독일어 방언이다. 지역마다 발음과 어휘가 조금씩 달라 작은 나라 안에서도 파두츠와 샨·운터란트의 방언을 구분하는 주민들이 있다.
산악지역 트리젠베르크에서는 발저독일어 계통의 방언이 사용된다. 발저인은 중세에 오늘날 스위스 발레지역에서 알프스 여러 지역으로 이주한 공동체다.
리히텐슈타인 주민과 스위스 독일어권 주민은 서로의 방언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지만, 독일에서 표준독일어만 배운 사람에게는 지역방언이 어렵게 들릴 수 있다.
외국인 주민과 국경 통근자가 많아 영어·이탈리아어·포르투갈어·튀르키예어 등도 사용된다. 전체 주민 가운데 외국 국적자의 비율은 약 3분의 1에 이른다.
귀족가문이 나라의 이름이 되다
리히텐슈타인이라는 국명은 국토의 지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스트리아의 귀족가문인 리히텐슈타인가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리히텐슈타인가문은 중부유럽에 넓은 토지와 성을 소유한 부유한 귀족이었다. 그러나 소유지 대부분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군주의 봉토였기 때문에 가문의 수장은 신성로마제국 제후회의에서 직접 의석을 가질 자격이 없었다.
제국의회 의석을 얻으려면 황제에게 직접 소속된 ‘제국직속영지’를 소유해야 했다. 이에 리히텐슈타인가문은 1699년 셸렌베르크영지를, 1712년 파두츠백작령을 구입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는 1719년 두 영지를 통합해 리히텐슈타인공국으로 승격했다. 새로운 나라는 토지를 구입한 가문의 이름을 갖게 됐다.
흥미롭게도 초기 리히텐슈타인 군주들은 자신들의 공국을 거의 방문하지 않았다. 가문의 주요 거주지와 정치적 기반은 빈과 보헤미아·모라비아에 있었고 작은 알프스 영지는 주로 제국 내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나폴레옹이 가져온 주권
리히텐슈타인은 1806년 나폴레옹이 만든 라인동맹에 가입했다. 같은 해 신성로마제국이 해체되면서 외부 군주에게 종속되지 않은 주권국가가 됐다.
1815년에는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구성된 독일연방에 가입했다. 이 시기에도 리히텐슈타인은 자체 군대를 유지했지만 병력은 수십 명에 불과했다.
1866년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의 전쟁으로 독일연방이 해체되자 리히텐슈타인은 완전한 독립국가로 남았다. 독일제국이나 오스트리아제국에 편입되지 않은 것이다.
리히텐슈타인은 1868년 군대를 폐지하고 영세중립정책을 채택했다. 이후 별도의 상비군을 두지 않고 있다.
마지막 군대와 관련해서는 1866년 전쟁에 80명이 출정했다가 오스트리아 연락장교 한 명과 함께 81명이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다. 다만 이 일화는 실제 전투보다 리히텐슈타인의 평화적인 국가 이미지를 상징하는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것이 적절하다.
오스트리아에서 스위스로
19세기 리히텐슈타인의 경제와 행정은 오스트리아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었다. 오스트리아 화폐를 사용했고 관세체제도 오스트리아에 의존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패배하고 경제가 붕괴하면서 리히텐슈타인도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저축의 가치가 떨어지고 식량과 일자리가 부족해졌다.
전쟁 이후 리히텐슈타인은 대외관계의 중심을 오스트리아에서 중립국 스위스로 옮겼다. 1923년 스위스와 관세동맹을 체결했고 1924년 스위스 프랑을 공식 통화로 채택했다.
두 나라 사이에는 관세검사가 없으며 상품과 사람이 자유롭게 이동한다. 스위스가 여러 국가에서 리히텐슈타인의 영사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도 한다.
전화·우편·철도·금융과 경제제도도 스위스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의 한 주나 보호령이 아니라 독자적인 헌법과 정부·의회, 국제적 법인격을 가진 주권국가다.
홍수와 대공황을 견딘 가난한 산악국
오늘날 리히텐슈타인은 부유한 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20세기 초까지는 농업과 목축에 의존하는 가난한 산악지역이었다.
1927년 라인강 제방이 무너지면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농경지와 주택이 물에 잠겼고 작은 국가의 경제는 큰 피해를 입었다.
1928년에는 리히텐슈타인의 주요 은행이 파산했다. 공금 횡령과 투기성 투자로 발생한 이 사건은 국가재정과 정치에 충격을 줬다.
많은 주민이 일자리를 찾아 스위스와 오스트리아, 독일·미국으로 이주했다. 농가는 소와 유제품, 포도·곡물을 생산했지만 경작지는 좁고 시장도 작았다.
정부는 낮은 세율과 회사등록제도, 우표 판매와 관광을 통해 새로운 수입원을 마련했다. 이때 만들어진 제도들이 훗날 금융업과 국제기업 유치의 기반이 됐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서 지킨 중립
리히텐슈타인은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모두 중립을 선언했다. 군대가 없었고 직접적인 전투도 벌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정세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나치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둘러싸인 스위스 경제권에 속해 있었으며 독일과의 무역도 이루어졌다.
리히텐슈타인 내부에는 나치 독일과의 합병을 지지하는 소규모 정치세력도 존재했다. 1939년 이들은 쿠데타를 시도했지만 주민과 정부의 반대로 실패했다.
프란츠 요제프 2세 공은 1938년 공가의 상주 거처를 빈에서 파두츠로 옮겼다. 이는 군주가 리히텐슈타인에 영구적으로 거주하기 시작한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전쟁 말기에는 소련군 소속으로 싸우기를 거부한 러시아계 병사 약 500명이 리히텐슈타인으로 넘어왔다. 리히텐슈타인은 소련의 송환 요구에도 일부를 강제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한편 전쟁 중 공가의 오스트리아 소재 농장과 기업에서 강제노동이 사용됐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리히텐슈타인은 중립국이었다는 사실만으로 당시 유럽의 강제노동과 경제관계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국민과 군주가 함께 주권을 갖는 나라
리히텐슈타인은 입헌세습군주국이면서 민주주의 의회국가다. 헌법은 국가권력이 군주와 국민이라는 두 주체에게 있다고 규정한다.
의회인 란트탁은 25명의 의원으로 구성된다. 오버란트에서 15명, 운터란트에서 10명을 비례대표 방식으로 선출하며 임기는 4년이다.
정부는 총리와 네 명의 장관으로 구성된다. 의회가 정부 구성원을 추천하면 군주가 임명한다. 2025년 4월 브리기테 하스가 최초의 여성 총리로 취임했다. 리히텐슈타인 정부
리히텐슈타인의 군주는 유럽의 다른 입헌군주보다 실질적인 권한이 강하다. 법률에 대한 재가를 거부할 수 있고 정부를 해임하거나 의회를 해산할 수 있으며 판사 임명과 헌법 개정에도 관여한다.
2003년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의 권한을 명확히 하고 일부 권한을 확대하는 헌법 개정안이 승인됐다. 이 때문에 리히텐슈타인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와 강한 군주권이 공존하는 독특한 정치체제로 평가된다.
한스아담 2세와 알로이스 세자
한스아담 2세 공은 1989년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2세의 뒤를 이어 즉위했다. 공가의 자산과 국가의 국제적 지위를 확대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그는 리히텐슈타인의 유엔 가입과 유럽통합 참여를 추진했고 군주의 정치적 권한을 둘러싸고 의회와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2004년 한스아담 2세는 장남 알로이스 세자에게 일상적인 국가원수 권한을 넘겼다. 그러나 공식적인 군주 칭호와 국가원수 지위는 여전히 한스아담 2세에게 있다.
알로이스 세자는 법률 재가와 정부 인사, 외교행사 등 군주의 직무를 섭정으로 수행한다. 따라서 현재 리히텐슈타인을 소개할 때 국가원수는 한스아담 2세, 실질적인 국가원수 권한 수행자는 알로이스 세자라고 구분하는 것이 정확하다.
공가는 파두츠성에 거주하지만 가문의 이름이 붙은 중세 리히텐슈타인성은 리히텐슈타인 영토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 인근에 있다.
국민투표가 일상적인 직접민주주의
리히텐슈타인은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국민발안과 국민투표가 활발한 나라다. 일정한 수의 시민이 서명하면 의회에서 통과된 법률이나 헌법 개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수 있다.
지방자치단체도 상당한 자율권을 가진다. 헌법상 각 지방자치단체는 주민투표를 통해 국가에서 탈퇴할 수 있는 권리까지 갖는다. 실제로 탈퇴한 지역은 없지만 작은 공동체의 자치권을 강조하는 독특한 조항이다.
여성에게는 1984년에야 국가선거 투표권이 부여됐다. 이는 유럽 국가 가운데 가장 늦은 시기였다.
이전에도 여성참정권 도입안이 국민투표에 부쳐졌지만 남성 유권자들에 의해 부결됐다. 1984년 투표에서도 근소한 차이로 통과됐다.
최근에는 여성의 정치참여가 확대되고 있다. 2025년에는 여성 최초로 브리기테 하스가 총리가 됐으며 정부 구성원 다수도 여성이 차지했다.
유럽연합에는 없고 유럽경제지역에는 있는 나라
리히텐슈타인은 유럽연합 회원국이 아니다. 그러나 유럽자유무역연합과 유럽경제지역에 가입해 유럽연합 단일시장에 참여한다.
상품과 서비스·자본·사람의 자유로운 이동과 관련해 유럽연합의 많은 규정을 받아들인다. 리히텐슈타인 기업들은 유럽연합 시장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다.
2011년에는 솅겐지역에 가입해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회원국과의 국경검문이 사라졌다. 스위스도 솅겐 회원국이어서 두 나라 사이에 일상적인 출입국검사가 없다.
다만 스위스와의 관세동맹 때문에 유럽연합의 관세체계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유럽연합 단일시장과 스위스 경제권을 동시에 연결하는 독특한 위치다.
리히텐슈타인은 1990년 유엔에 가입했고 2024년에는 국제통화기금의 191번째 회원국이 됐다. 작은 행정조직을 보완하기 위해 스위스와 외교·관세·통화 분야에서 협력하면서도 국제기구에서는 독립국가로 활동한다.
주민보다 일자리가 많은 나라
리히텐슈타인의 경제를 금융업만으로 설명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로는 제조업의 비중이 매우 크다. 정밀기계와 공구·자동차부품·치과재료·전자제품·식품·난방기술 기업들이 세계시장을 대상으로 제품을 생산한다.
국토와 인구는 작지만 국내에 등록된 일자리 수가 주민 수와 비슷하거나 더 많을 정도로 경제활동이 활발하다. 근로자의 절반 이상은 매일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독일에서 국경을 넘어 출근한다.
낮에는 인구가 크게 늘고 저녁이 되면 많은 근로자가 주변 국가로 돌아간다. 국가의 생산과 세수는 외국인 노동력과 주변 지역의 교통망에 깊이 의존한다.
실업률과 국가부채는 매우 낮은 편이며 국가신용등급도 최고 수준을 유지한다. 2026년 국제신용평가사 S&P는 리히텐슈타인의 국가신용등급을 AAA로 유지했다. 리히텐슈타인 정부 국가신용등급 자료
그러나 수출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를 비롯한 주요 교역국의 경기침체와 환율변동, 국제무역 갈등에 영향을 받는다.
세계에 공구를 공급하는 힐티
리히텐슈타인을 대표하는 기업 가운데 하나는 건설용 공구와 고정장치를 생산하는 힐티다. 1941년 마르틴 힐티와 오이겐 힐티 형제가 샨에서 설립했다.
힐티는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드릴과 앵커·절단장비·측정장비로 성장해 세계 여러 국가에서 사업을 운영한다. 붉은색 공구와 직접판매·현장서비스 방식으로 잘 알려져 있다.
치과재료 기업 이보클라르는 인공치아와 세라믹·디지털 치과기술을 세계시장에 공급한다. 난방·환기장비 기업 호발과 식품기업 힐코나도 리히텐슈타인에서 성장한 국제기업이다.
이들 기업은 제품을 대규모 내수시장에 판매할 수 없기 때문에 설립 초기부터 해외시장을 목표로 삼았다. 연구개발과 특허·전문인력 교육에 투자하면서 좁은 국토의 한계를 극복했다.
리히텐슈타인은 인구 대비 기업과 특허, 연구개발 인력이 많은 나라다. 경제의 성공은 낮은 세율뿐 아니라 전문 제조업과 수출기업의 경쟁력에서 비롯된다.
금융중심지와 조세피난처 논란
파두츠에는 은행과 보험회사·신탁회사·자산운용사가 모여 있다. 정치적 안정과 스위스 프랑, 전문적인 자산관리제도를 바탕으로 국제금융 중심지로 성장했다.
리히텐슈타인 공가와 연관된 LGT은행, 리히텐슈타인국립은행, VP은행 등이 대표적인 금융기관이다. 특히 고액자산가를 위한 개인금융과 재단·신탁 관리가 발달했다.
과거에는 강한 은행비밀주의와 낮은 세율 때문에 조세피난처라는 비판을 받았다. 외국인이 세금이나 자산소유 정보를 숨기는 데 리히텐슈타인 법인과 재단을 이용한 사례도 드러났다.
2008년 독일 세무당국이 리히텐슈타인 은행의 고객자료를 확보해 탈세 혐의를 조사하면서 국제적인 조세논란이 크게 확산됐다.
이후 리히텐슈타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와 유럽연합 기준에 맞춰 조세정보 자동교환과 자금세탁 방지, 법인의 실소유자 확인제도를 강화했다.
현재 금융산업은 비밀계좌보다 규제된 자산관리와 투자서비스를 강조한다. 그러나 국제금융의 투명성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불법자금 유입을 차단하는 일은 여전히 중요한 과제다.
우표가 국가재정을 도운 시대
리히텐슈타인은 아름답고 정교한 우표로 수집가들에게 유명하다. 20세기 초부터 발행된 우표에는 공가의 초상과 알프스 풍경·성·야생동물·예술작품이 담겼다.
국가가 가난했던 시절에는 해외 수집가에게 판매한 우표가 중요한 외화수입원이 됐다. 작은 국가라는 희소성과 섬세한 디자인이 결합해 국제적인 수집품으로 자리 잡았다.
파두츠의 우편박물관에서는 우편제도의 역사와 우표 원화·인쇄기술을 살펴볼 수 있다. 거리에는 관광객이 여권 모양의 기념수첩에 리히텐슈타인 입국도장을 받을 수 있는 관광안내소도 있다.
실제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이동할 때는 솅겐협정에 따라 일상적인 여권검사가 없다. 관광도장은 법적 출입국 기록이 아니라 방문기념품이다.
리히텐슈타인의 우표는 작은 나라가 제한된 자원을 문화와 디자인으로 바꾸어 세계에 이름을 알린 사례다.
공가가 수집한 세계적인 미술품
리히텐슈타인 공가는 수백 년 동안 유럽의 주요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소장품에는 루벤스와 반다이크·라파엘로·렘브란트 등 유럽 거장들의 회화와 조각·가구·공예품이 포함돼 있다.
소장품 상당수는 파두츠가 아니라 오스트리아 빈의 리히텐슈타인가든팰리스와 시티팰리스에 보관돼 있다. 공가의 역사적 기반이 오스트리아와 보헤미아에 있었기 때문이다.
파두츠의 리히텐슈타인미술관은 검은색 직육면체 형태의 현대건축물로, 현대미술과 국가 소장품을 전시한다. 인접한 힐티예술재단에는 고전현대미술 작품이 소개된다.
리히텐슈타인국립박물관에서는 선사시대 유물과 농촌생활, 공국의 형성·산업발전·자연환경을 살펴볼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그러나 파두츠성과 구텐베르크성, 셸렌베르크의 성터, 전통 농촌경관과 산업유산을 국가 차원에서 보호한다.
알프스와 겨울스포츠
나라 동쪽의 말분은 리히텐슈타인을 대표하는 스키마을이다. 규모는 작지만 가족 단위 스키와 스노보드, 겨울산책을 즐길 수 있다.
리히텐슈타인은 작은 인구에도 동계올림픽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뒀다. 특히 알파인스키 종목에서 여러 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한니 벤첼은 1980년 레이크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여자 회전과 대회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동생 안드레아스 벤첼과 딸 티나 바이라터도 세계적인 알파인스키 선수로 활약했다.
리히텐슈타인은 동·하계올림픽을 통틀어 메달을 모두 알파인스키에서 획득했다. 인구 대비 올림픽 메달 수가 세계 최고 수준인 국가로도 알려져 있다.
여름에는 ‘리히텐슈타인 트레일’을 따라 11개 지방자치단체를 걸을 수 있다. 산악지역에서는 등산과 자전거·암벽등반, 라인강 계곡에서는 평탄한 자전거여행이 가능하다.
치즈국수와 옥수수 음식
리히텐슈타인의 음식은 스위스 동부와 오스트리아 포어아를베르크의 식문화와 매우 비슷하다. 치즈와 감자·옥수수·유제품을 많이 사용한다.
대표적인 음식은 케스크뇌플레다. 밀가루와 달걀로 만든 작은 국수에 녹인 치즈를 섞고 바삭하게 볶은 양파를 올린다. 사과소스를 곁들이기도 한다.
리벨은 옥수수와 밀가루를 우유나 물에 익힌 뒤 잘게 부수어 볶은 전통 농가음식이다. 과거 가난한 농민들의 주식이었지만 오늘날에는 지역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향토음식으로 소개된다.
감자와 채소·베이컨을 넣은 수프, 송아지고기와 소시지, 알프스 치즈도 널리 먹는다. 사과와 자두로 만든 디저트와 빵도 발달했다.
파두츠와 주변 산비탈에서는 포도를 재배한다. 공가 소유의 포도원에서는 피노누아와 샤르도네 등의 와인을 생산한다. 푄바람이 포도를 익히는 데 도움을 준다.
국경 없는 일상과 교통
리히텐슈타인에는 국제공항이 없다. 가장 가까운 주요 공항은 스위스 취리히공항이며, 소규모 공항으로는 스위스 장크트갈렌·알텐라인공항이 있다.
나라를 통과하는 철도는 오스트리아철도가 운영한다. 샨·포르스트힐티와 넨델른 등에 역이 있지만 열차편이 많지 않아 주민들은 자동차와 버스를 주로 이용한다.
국내 버스망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의 철도역·도시까지 연결된다. 일상적인 통근과 쇼핑, 교육·의료서비스 이용에서 국경은 큰 장벽이 아니다.
스위스 부흐스와 리히텐슈타인 샨은 라인강 다리 하나로 연결돼 있다. 오스트리아 펠트키르히도 파두츠에서 가까워 주민들의 생활권이 세 나라에 걸쳐 형성된다.
국경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지만 스위스 관세영역과 유럽연합 관세영역이 만나는 곳이기 때문에 오스트리아 국경에서는 상품에 대한 세관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다.
높은 생활수준 뒤의 과제
리히텐슈타인은 높은 임금과 낮은 실업률, 안정적인 재정과 치안을 갖춘 나라다. 효율적인 행정과 전문 제조업, 금융산업이 주민들에게 높은 생활수준을 제공한다.
하지만 작은 국토와 경제적 성공은 주택가격과 토지가격을 높였다. 산지와 농지·자연경관을 보호하면서 필요한 주택과 기업시설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다.
경제는 외국인 전문인력과 국경 통근자에 크게 의존한다. 주변 국가와의 자유로운 이동이 제한되거나 스위스와 유럽연합의 경기가 악화되면 리히텐슈타인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강한 군주권을 두고도 논쟁이 계속된다. 지지자들은 군주가 정당정치의 갈등을 조정하고 국가의 장기적 안정을 제공한다고 본다. 비판자들은 선출되지 않은 군주가 법률과 정부에 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현대 민주주의 원칙과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산업에서는 국제조세와 자금세탁 방지 기준을 지키면서 경쟁력을 유지해야 한다. 제조업은 에너지 전환과 공급망 변화, 숙련인력 부족에 대응해야 한다.
작지만 독립적인 선택을 지켜온 나라
리히텐슈타인은 흔히 ‘스위스 옆의 작은 부자 나라’로만 소개된다. 그러나 이 나라는 스위스의 일부가 아니며 단순한 조세피난처만도 아니다.
귀족가문이 제국의회 의석을 얻기 위해 구입한 두 영지에서 출발했지만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연방이 해체되는 격변 속에서 독립국가로 살아남았다.
군대를 폐지하고 스위스와 관세·통화체제를 공유하면서도 별도의 헌법과 의회·정부, 국제적 주권을 유지했다. 농업국가에서 정밀제조업과 금융·연구개발 중심의 경제로 변신하는 데도 성공했다.
리히텐슈타인의 특징은 작은 규모 자체보다 작은 규모를 활용하는 방식에 있다. 정부와 기업·주민 사이의 거리가 짧고 정책을 빠르게 결정할 수 있으며 주변 국가의 시장과 인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리히텐슈타인은 단순히 ‘알프스의 작은 공국’이나 ‘부유한 금융국가’가 아니다. 강한 군주제와 직접민주주의, 스위스 경제권과 유럽 단일시장, 전통 농촌사회와 세계적인 제조업이 한 공간에서 공존하는 독특한 주권국가다.
관련 링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