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은 견고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미국의 주요 정책들은 대통령 임기만큼의 수명을 가진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전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하루 만에’ 뒤집히고, 각 부처의 규제는 삭제, 폐지, 또는 정반대로 바뀐다. 미국은 이제 ‘정책의 시계추 민주주의(pendulum democracy)’, 즉 오르락내리락하는 정권 순환 속에서 뒤집히는 나라가 되었다.
대통령의 서명 한 번으로 사라지는 정책들
미국에서 대통령은 입법권은 없지만, 강력한 행정명령(Executive Order)과 부처의 규제 권한을 통해 정책을 집행한다. 하지만 이러한 수단은 차기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간단히 폐기할 수 있다.
- 오바마: DACA (불법체류 청소년 보호) – 트럼프가 폐지 시도
- 트럼프: 무슬림 국가 입국 금지, 파리기후협약 탈퇴 – 바이든이 즉시 철회
- 바이든: 연방 기후정책 강화, 학생대출 탕감 시도 – 트럼프 철회
이처럼 정책의 운명은 더 이상 의회나 법률에 의해 정해지지 않고, 대통령이 누군가에 따라 요동친다.“되돌리기”는 정책이 아니라 메시지다 정책을 폐지하거나 되돌리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조치가 아니다. 새 대통령은 ‘전임자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정치적 선언’을 함께 한다. 이는 정책의 지속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행정부 전체를 정권에 따라 흔들리는 불안정한 구조로 만든다. 예컨대,
- 트럼프가 오바마 정책을 “미국을 망친 유산”이라며 철폐
- 바이든은 트럼프 정책을 “민주주의 파괴”라며 되돌림
- 다시 트럼프가 복귀하면서 바이든 “급진 좌파 정책” 폐기
이러한 반복은 미국 시민들에게 정치에 대한 피로감과 함께, 정책의 신뢰 상실을 초래한다.
연방기관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연방정부 기관들도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점이다. EPA(환경보호국), HHS(보건복지부), DHS(국토안보부) 등은 정권에 따라 다른 지침을 따르게 되고, 기관 내 전문가 집단 역시 정권에 따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다. 기관 내부의 관료들은 정권에 따라 같은 사안을 두고 서로 다른 지침, 다른 용어, 다른 목표를 수용해야 한다. 이는 결국 행정 효율성과 정책 신뢰성을 저해한다.
결국 남는 것은 대법원의 판결뿐
행정명령과 규제의 빈번한 철회 속에서, 유일하게 정책의 운명을 결정하는 최종 심판자는 대법원이다.
- 오바마의 DACA → 트럼프가 폐지하려 했지만 대법원이 제동
- 바이든의 학생대출 면제 → 대법원이 위헌 판결로 무효화
- EPA의 기후규제 → 대법원이 “과도한 권한 행사”라며 축소
사법부가 정책의 운명을 좌우하게 되면서, 정책의 핵심은 행정부가 아니라 사법부에서 결정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민주주의 위기다 — “선거로 뽑히지 않은 권력”이 통치의 키를 쥐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법을 만들지 못하면, 법은 정치가 된다
오늘날 미국 정치의 아이러니는 이렇다.
- 법은 제정되지 않고
- 규제는 뒤집히며
- 정책은 대법원이 결정한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권 교체는 곧 ‘정책 리셋’을 의미하고, 국가 전략이나 장기 계획은 실현되기 어렵다. 법의 부재, 의회의 무기력함, 그리고 정치화된 사법부 — 이것이 바로 되돌려지는 미국의 통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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