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April 17,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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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손님 – 포트리 《평안동 양옥집》 ‘국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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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식도락가 음식은 — 인생 백 년 손님과 같다. 첫인상에 정들었던 따뜻한 사람, 어릴 적 뒤엉켜 놀던 희미해진 얼굴, 방황하던 십 대에 남해바다 같이 떠돌던 죽마고우, 첫눈에 설렜던 산동네 예배당 열세 살 첫사랑, 내 인생 오랜 손님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지금도 빛을 발한다. 옛추억에 크게 웃으며 밥을 먹고 싶은, 생각만 해도 행복했던 시절의 손님을 — 기척이 조금만 느껴져도 뛰쳐나가 반길 것이다.

생각해 보면, 찰나의 순간도 싫었던 놈들이 더 많았다. 다시는 오고 싶지 않은, 좋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의 뒤끝처럼, 삼키지도 뱉지도 못하는 찝찝함, 그들은 모두 ‘손님’이 아닌 ‘손놈’이었다. 음식도 정말 그렇다. 평생 단 한 명으로 족할 만큼 좋은 친구처럼, 한 번 입맛에 반 평생 지나도 잊지 못하는, 그런 음식은 정말 찾기 힘들다.

어머니가 끓인 ‘국’은 때론 짜고 때론 싱거워도 언제나 담백했다. 추운 겨울엔 속을 따뜻하게 하고, 더운 여름엔 땀을 식혀 주었다. 가난했던 시절 쇠고기는 정말 귀했다. 명절에나 가끔 맛볼 수 있는 한우! 자식에게 먹였던 — 하지만 당신은 단 한점도 먹지 못했던, 어머니의 쇠고기에는 달콤하고 부드러운 어머니의 기쁨과 행복이 녹아 있었다.

지쳐서 돌아올 때, 정신이 혼미할 때, 모든 게 귀찮고 짜증이 날 때, 그것을 치료하는 묘약이 어머니 ‘국’에 있었다. 우리는 다시 활기를 찾았고 또 엄마에게 투정부릴 힘을 얻었다. 이제는 더 이상 맛볼 수 없는, 자식 누구도 물려받지 못한, 어머니 손맛은 추억과 함께 가슴 속에 묻혔다.

어머니는 내 아들이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지 못하셨다. 두 살 때쯤, 무릎에 한 번 앉혀 보시고는 세상을 걱정하셨다. 일제시대와 6.25전쟁, 1.4후퇴를 겪으셨으니 손자 세대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신 거였다. 아들은 친할머니를 잘 기억하지 못한다. 그게 못내 아쉽지만 어머니 오랜 기도는 내 아들, 어머니 손자를 지키시리라 믿는다.

저녁 다섯 시경, 아들에게 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해서, 그럼 저녁 식사로 순두부를 먹자고 했더니 포트리(Fort Lee)에 평안동 양옥집이 있다며 그곳으로 가자고 했다. 들었던 이름이었다. 약 4년전, 팰팍(Palisades Park) 처음 왔을 때, 뉴저지에서 수십 년 살았던 친구가 같이 식사하자면서 갔던 곳이다. 그때는 주차를 할 수 없어서 다른 곳으로 갔었다. 그 후 한번도 그곳에 간 적이 없다. 포트리 파리 바케트에서 약간 비탈진 리버 로드(River Road) 방향 한 두 블록 아래에 있어서 잘 보이지 않는다.

아들이 ‘국밥’이 맛있다며 먼저 정했다. 커다란 받침종이에 메뉴가 가득했지만, 곧바로 아들과 같은 걸 주문했다. 요즘 경기가 좋지 않고, 좀 일러서인지 짙은 테이블 한 두 자리에만 다른 손님이 있었다.

‘국밥’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실, 이곳 음식에 대한 글을 쓸 계획은 아예 없었다. 먼저 ‘국’이 두 개 나오고 곧바로 몇 개의 찬이 차려졌다.

지극히 소박한 밥상! 놋쇠 그릇에 담긴 평범해 보이는 ‘국’ 한 그릇에 식당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반찬 여섯 개, 그리고 잡곡밥이 나왔다. 일어나서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서빙 하는 분이 오시더니, 사진 올리면 별 다섯 개 줘야 한다고 농담을 하셨다. 아마도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올린다고 생각하신 것 같았다. 그래서 “별 다섯 개로 되겠어요? 열 개는 드려야죠!” 하며 맞받았다.

‘국’ 한 수저를 입에 넣었을 때, 매콤하고 칼칼한 맛이 입 안 가득 느껴졌다. 그러면서도 담백하고 시원했다. 순간 떠올랐다. “어머니의 묘약이다!” 정신이 바짝 들었다.

수저로 연거푸 마시고는 잡곡밥을 먹었다. 잡곡밥 강한 맛이 담백하고 칼칼한 맛을 희석시켰다. 아, 흰쌀밥을 시켰어야했다. ‘국밥’은 국에 밥을 말아서 나오지만, 이렇게 따로 나오는 것이 맞다. 밥을 말았다면 어머니의 고귀한 맛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양옥집 사장님은 이걸 아신 것 같다. 어떤 손님이 국에 밥을 말아먹었다면, 원하지 않은 처녀성을 짓밟은 큰 죄를 짓는 것이다. 정말 그렇게 드시면 안된다!

아들이 고기도 맛보라고 했다. 고기 몇 점을 입에 넣자 그 향이 한우처럼 달게 느껴졌다. 씹을 필요조차 없을 만큼 부드러웠다. 너무 익지도 설지도 않은 무채에 콩나물, 그리고 얇게 저민 파, 지금은 어디서도 찾기 힘든 전통의 맛 그대로였다. 할머니의 할머니로부터 내려온 시골 장터 손맛, 사라져버린 그 맛이 여기에 있었다.

겉절이 김치를 한 입 물었다. 여느 한식당에서 볼 수 있는, 싱싱하지도 숙성되지도 않은, 때로는 급조된 맛에 조미료 맛 강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씹었다. 순간, 어리굴젓 맛을 강하게 느꼈다. 이럴 수가, 그 비싼 어리굴젓을 넣지는 않았을 텐데 하면서 몇 번 더 맛을 보았다. 확실히 어리굴젓 맛이었다. 서빙 하시는 분에게 물어보았다. “겉절이에 어리굴젓을 넣었나요?”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굴’을 넣었다는 것이다. 그제서야 이해가 됐다. 어리굴젓이 싱싱한 굴을 고추가루 양념에 재이는 것이니까, 굴이 겉절이 양념과 숙성되어 어리굴젓 맛이 난 것이었다. 한번 더 달라고 해서 먹었다.

수 십년 해외에서 살았지만 해외교민이 그리워하는 김치를 거의 먹지 않았다. 싱싱한 생태를 넣어 담근 어머니 김치에 익숙해서였다. 쓴 맛에 어설프게 숙성된, 양념의 기본도 모르는 김치가 천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맛있는 겉절이를 먹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아들에게 이 맛은 젊은 애들이 좋아하지 않겠는데 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다들 좋아했다고 한다.

쑥갓 나물이 있어 맛을 보았다. 전통의 맛 그대로 역시 담백하고 상큼했다. 후에 유채나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부침과 오뎅, 총각김치, 계란 등을 싹 다 비우고 한 번 더 달라고 해서 먹은 뒤 우리는 모처럼 웃었다. 정말 오랜 만에 옛맛을 잃지 않은 — 어머니가 생각나는, 좋은 음식을 먹었다. 계산을 치르고 나서 중얼거렸다.

“내 국에 고기가 더 적었어!” (c)食道樂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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