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July 23,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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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김구선생 서거 75주기 추모식 뉴욕에서 열려

New York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뉴욕지회(회장 김광석)와 안중근의사숭모회뉴욕지회(회장 김재국)는 백범김구선생 서거 75주기 추모식을 지난 26일 오전 11시 베이사이드 KCS 커뮤니티센터에서 개최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뉴욕지회 제공)

이날 행사에는 유진희 광복회장, 김광석 뉴욕한인회장, 홍종학 박정희대통령뉴욕기념사업회 이사장 및 이청일 회장 등 주요 인사 50여 명이 참석해 조국의 독립과 통일에 헌신하고, 홍익인간 문화 강국을 염원한 백범선생의 뜻을 기리는 시간을 가졌다.

박기석 이사 사회로 국민의례와 애국가 제창,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과 윤영제 상임고문의 개회사로 추모식이 시작되었다.

유진희 대한민국광복회뉴욕지회장은 A4 세 장 분량의 친필 추모사를 낭독하였다.

▲ 유진희 대한민국광복회뉴욕지회장

무더운 날씨에 존경하는 동포 여러분, 반갑습니다.

항일 독립투사이신 백범 김구 선생께서 흉탄에 서거하신지 75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선생이 사시던 경교장에서 걸어서 불과 10여 분 떨어져 살던 저희 집 앞으로 국민장 행렬이 지나던게 엊그제의 일처럼 떠 오릅니다.

일제 강점기와 해방 그리고 대한민국 건국사에 있어 빼놓을 수 없는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은 의병에서 시작하여 애국계몽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으로 독립운동 50년 역사를 이어갔습니다.

그러면서 동학, 유학, 기독교 등으로 종교를 섭렵했지만 최고 가치를 민족에 두고 통합, 통일운동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리하여 임시정부 시절 좌우 합작을 일구어냈고, 환국한 뒤에는 통일국가 수립운동에 몸을 던졌던 것입니다. 환국한지 3개월인 1946년 2월 선생은 비상국무회의 부통재가 되고 국민회의로 개편될 때 부총재에 취임하였으며 임시정부가 직접 행정을 장악하려 하였지만 미군정에 저지 당하고 말았습니다.

선생은 분단을 반대하면서 통일국가를 추진하였으며, 남북한이 각각의 국가와 정부를 만드는 단계에 이르자 마지막으로 남북협상을 선택하여 1948년 4월 19일 평양으로 달려가 대표자 회의를 가졌지만 끝내 남북은 분단되고 말았습니다.

한국 근대사에는 꺼져가는 국운에 맞서 온몸과 마음을 바친 민족지도자들이 많았으며, 그들은 오직 민족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알수없는 산간벽지 쓰러져 가는 고옥에서 초근목피로 배를 채우고 일제에 항거하고 싸웠던 처절했던 세월의 역사를 말하게 됩니다.

왜적의 무자비한 총칼 아래서 죽음을 눈앞에 둔 생사의 갈림길에서 희생된 우리의 선열들은 15만명에서 30만명에 이르고 있으나 이분들 거의가 후손이 없거나 이름조차 남기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한 분들이기에 백범 김구선생은 환국 1개월 후인 1945년 12월 23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순국 선열 추모제에서 추념문을 낭독하시게 됩니다.

“우리 나라의 할아버지인 단군께서 가시밭길을 열어 젖히시고 우리 몸소 당한 바 변란이야말로 역사상 보지 못했던 처음 있는 비참한 일이라..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여러분을 자나깨나 잊지 못하나이다. 몸은 쓰러져도 얼은 나라를 놓지 아니하고 숨은 끊어져도 뜻은 겨레와 얽메이어 어느 분의 최후가 하늘이 울고 땅이 슬퍼할 큰 자취가 아니신가! 살아 생전은 그만두고 돌아 가신 후까지 쓸쓸한 이가 많음을 어찌 하리오.. 해와 별과 나란이 빛날 선열의 업적이 많으시려니..”

이 자리에서 백범 김구선생은 왜적에게 모든 것을 빼앗겨도 뿌리는 빼앗기지 말아야지 뿌리까지 왜놈에게 빼앗기면 새싹이 돋아날 희망을 잃게 되고, 뿌리라도 살아 남으면 새로운 싹이 돋아날 희망이 있음을 역설하고 뿌리만이라도 살아 남아야 한다고 단군 할아버지를 거론하면서 절규하셨던 것입니다.

요즘 세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만 할뿐입니다.일본이 저질렀던 수많은 범죄행위를 배운 세계의 유명대학교 학생들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일제가 한국에서 저지른 강제징용, 식량수탈, 문화재도굴, 위안부 강제동원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가슴 아픈 역사를 듣고 눈물짓는(역사를 다시 되새기는) 사람이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후 혼란하고 급변하는 고국생활을 하시던 중 신탁통치의 찬반대립으로 장덕수, 송진우 선생이 암살되자 그 배후로 지목된 백범은 미국 법정에 출두하라는 미국대통령 트루만의 출두요구서까지 받게되어 결국은 미군법정에 서는 힘든 고국생활을 하시기도 했습니다.

우리에겐 백범선생이나 이름 모를 순국 선열 등과 같이 훌륭한 분들이 계셔 살아 숨쉬는 계기가 되었음으로 위대한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는 우리 각자가 되길 바라면서 백범선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추모의 글을 올립니다.

2024년 6월 26일
광복회 뉴욕지회
회장 유진희





유진희 회장에 이어 김광석 뉴욕한인회 회장/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뉴욕지회장의 추모사가 이어졌다.

▲ 김광석 뉴욕한인회 회장/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뉴욕지회장

존경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오늘 우리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김구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김구 선생은 평생을 조국의 독립과 통일을 위해 헌신하신 분으로 그 정신은 지금도 우리 마음 속에 깊이 새겨져 있습니다.

김구 선생은 일제 강점기 동안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웠을 뿐만 아니라, 해방 후에도 한반도의 분단을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는 남과 북이 하나가 되어 통일된 대한민국을 이루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계셨습니다.

1948년, 김구 선생은 단독정부 수립을 강력히 반대하였습니다. 그는 분단된 조국이 아닌, 하나의 통일된 나라를 원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분단된 정부가 결국 민족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깊은 우려 때문이었습니다. 김구 선생은 이를 막기 위해 남북협상을 위해 노력하셨고 통일된 국가의 건설을 위해 힘쓰셨습니다.

단독정부 설립 반대에 대하여 혹자는 김구는 이상주의자이다. 심지어는 공산주의자라는 말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볼 때, 남과 북은 각기 단독정부 수립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의 눈으로 볼 때에 김구 선생님은 분명 이상주의자이었을 것입니다. 남북협상을 위해 북을 방문한 김구 선생님은 남측에서 볼때에 공산주의자라고 몰아붙였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오랜 임시정부시절에도 공산주의와는 뜻을 한번도 함께 하지 않으셨던 분입니다.

민족이 분열되고 대치되는 것을 명약관화하게 예견하셨던 김구 선생님은 강대국의 입김에서 우리가 뭉치면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신념을 백성들에게 심고자 했지만, 1949면 암살로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김구 선생의 이러한 헌신과 희생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그의 뜻을 이어받아 분단된 조국을 하나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통일과 평화는 김구 선생이 평생을 바쳐 이루고자 했던 꿈이었으며, 오늘날 우리 모두가 함께 이루어야 할 과제입니다.

존경하는 김구 선생님, 선생님의 희생과 헌신에 깊은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뜻을 기억하며, 통일된 대한민국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선생님의 영전에 하나님의 평강이 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KCS(뉴욕한인봉사센터) 합창단과 김천일 지휘로 백범김구선생 추모곡 합창이 있었다. 참석자 전원의 김구선생 헌화와 만세삼창 그리고 김재국 안중근의사숭모회뉴욕지회장의 폐회선언으로 추모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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