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ashington D.C. — 미국 하원은 4월 11일(현지시간), 유권자 등록 시 시민권 증명을 의무화하는 ‘미국 유권자 자격 보호법(SAVE Act)’을 찬성 220표, 반대 208표로 통과시켰다. 공화당이 주도한 이 법안은 비시민권자의 투표를 막는다는 명분 아래 발의되었으나, 실제로는 수천만 명의 합법적인 유권자를 투표에서 배제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번 표결에서는 민주당 의원 4명(자레드 골든[메인], 마리 글루센캠프 페레즈[워싱턴], 헨리 쿠엘라[텍사스], 에드 케이스[하와이])가 찬성표를 던졌고, 공화당 내에서는 이탈표가 없었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유권자 등록 또는 정보 갱신 시, 시민권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여권, 출생증명서, 귀화증서 등)를 직접 제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브레넌 센터 등 주요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시민권자 가운데 약 2,130만 명(전체 유권자의 9% 이상)은 이러한 문서를 쉽게 구비하지 못하고 있으며, 380만 명 이상(2%)은 아예 해당 문서를 소지하지 않은 상태다.

또한, 혼인으로 이름을 바꾼 여성(약 6,900만 명), 농촌 지역 거주자, 장애인 등은 새로운 요건을 충족하기 더욱 어렵기 때문에, 특정 계층에 불균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 하원의원 조 모렐레(NY)는 “여성, 군인, 유색인종이 특히 타격을 입을 것이며, 이는 현대사에서 가장 해로운 투표 억제 법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 법안은 우편투표에도 영향을 미친다. 현재는 선거일 이후 도착한 우편투표도 일정 조건 하에 인정되는 주가 많지만, SAVE법은 선거일 이후 도착한 모든 우편투표를 무효 처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선거 당국자에 대한 처벌 조항도 포함돼 있다. 잘못된 서류를 받은 유권자를 등록시킨 선거 관계자에게 최대 5년의 징역 또는 민사소송이 가능하도록 하여, 현장 행정에도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콜로라도주 국무장관 제나 그리스월드는 “SAVE법은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참여를 훼손하고 수백만 명의 유권자를 배제하는 위험한 법”이라며 강력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상원에서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를 뚫기 위해 60표의 찬성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민주당 의원 7명 이상이 찬성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의 알렉스 파디야(캘리포니아) 상원의원은 “이번 법안이 상원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끝까지 막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SAVE법은 지난해에도 하원에서 통과됐지만, 상원에서 계류되며 당시 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거부권을 행사할 뜻을 밝힌 바 있다. 반면, 이번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법안을 공개 지지하고 있어 향후 상원 논의 결과에 귀추가 주목된다.


